일상을 잊은 사람

by 상상혁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는 그 흐름에 정처없이 휩쓸리고 있었다.


늘 과도하게 수강한 전공 수업들과 넘쳐나는 과제, 끝나지 않는 동아리의 회의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집에 돌아와도 쌓아둔 할 일들을 떠올리며 잠들 수 없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내게 부담으로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지친 이유는 뭘까, 이렇게하면 즐거울 줄 알았는데.


어느 주말 아침 아무런 계획도 잡지 않은 하루였다. 심리학을 공부하던 친구가 딱 하루만 비워보라고 조언했었다. 모처럼 일찍 깬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섰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 산책로는 평소처럼 고요했다. 처음엔 그저 무심히 걸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씩 다르게 느껴졌다.


어제 내린 비 덕분인지 길가의 흙냄새가 진하게 올라왔고,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이 반짝였다. 벤치에 앉아 쉬다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웃음소리를 내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의 웃음은 내 속에 얽힌 무언가를 조금 풀어주는 것 같았다.


산책을 마치고, 오랜만에 자주 가던 작은 편의점에 들렀다. 불닭 볶음면과 우유를 구매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이 간단히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그 말에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나는 집 앞 편의점에서 놀 만큼의 여유조차 잃고 있었던 것 같다.


라면을 한 입 먹자 매운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 뒤로 따라오는 약간의 달콤한 맛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음식, 강렬한 맛, 잠시 멈춰 서 있는 나 자신. 내가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빨라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나를 몰아붙였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맛있어하고 언제 웃는지에는 관심에 없었다. 오늘 느낀 웃음과 매콤함은 내가 그동안 지나쳐왔던 위로였다.


삶은 여전히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혼란 속에서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음미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것. 이 모든 순간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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