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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침반

by 프라임 핏

나침반 없이 길을 나선다. 나는 목적지로 향하는 방향을 모른다. 게다가 방향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 본 적도 없다. 사회의 보편적 선택이기 때문에, 나침반 없이도 가기 쉽다는 조언에 여정을 떠났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회의가 든다. 이렇게 가다가는 도착할 수는 있을지 두렵고, 그곳이 상상과 다를까 봐 불안하다. 무엇보다 '쉬운 길'이라는 이유로 그곳을 선택했다는 나의 동기가 수치스럽다. 그래서 목적지를 바꾼다. 중간에 방향을 바꾼 탓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미 여기가 어딘지는 모른다. 목적지가 어느 방향인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이 최종 목적지일지도 알 수 없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여정이다.


만약 목적지가 고정되어 있다면 흔들릴 이유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이상적인 삶인지, 최선의 삶인지가 결정되어 있다면 그대로 살면 그만이다. 모두가 지나온 길에는 지도도 존재할 것이며, 세상 모든 것이 나침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상에는 이상적 지표는 없어 보인다. 과연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좋은 목적지'라는 것을 밝혀낼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란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매일 갈팡질팡한다. 혼란스럽고 괴로우나 그것을 수용한다. 그것이 사실일 테니까.


"너희들이 겪어온 모험 그것이 보물이다." 어느 소년 만화 최악의 결말 같은 이 대사는 안타깝게도 우리 인생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다. 실질적인 보상을 바라는 우리와 다르게, 세상은 금은보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힘, 부, 명성은 대체로 통용되나 진리는 아니다. 세속적 가치를 바라지 않는 이들에게 '욕심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더 좋은 것을 갖기 원하는 것이다. 대체로 통용될 보편적 성공에 자신을 속이지 않고, 거짓 편안함에 질식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그 흔들림과 방황을, 그 자취를 우리는 '서사'라고 말한다. 만약 희소성이 가치의 기준이라면, 서사는 고유하며 유일한 가치를 갖는다. 삶에 나침반이 없는 건, 모든 방향이 틀린 방향이자 맞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그 방향을 걷기 위한 동기부여일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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