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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심슨 Jan 07. 2020

각자의 입장

시집살이 개집살이 12

시집살이 개집살이 12

시집살이에 대해 솔직히 쓰기로 했으면서도 쓰기가 꺼려지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오늘도 이 이야기를 쓸까 말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왜냐면 이 에피소드는 떠올릴때마다 나나 시어머니가 우울과 감정의 앙금이 일어나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당일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집으로 향하는데 이제는 우리 두 사람이 당당하게 한 집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부부가 됐음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비록 시집살이를 해야하는 처지이지만 행복했다. 집에 거의 다 왔을때 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잘 도착했어?-


“응. 덕분에. 지금 공항 버스야.”


-누나.-


“응?”


-혹시 엄마 아빠한테 할머니 얘기 들었어?-


“아니?”


-...돌아가셨어.-


잠시 말문이 막혔다. 돌아가셨다는 이별의 말이 실감이 안나서, 마음속에 일렁이는 혼란의 파도가 너무 커서...한동안 말이 안나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실것 같다는건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기 한참전부터 할머니는 사경을 헤매셨다. 몇 번 중환자실에 가시기도했다.

마지막으로 뵈었을땐 할머니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계셨다. 심박계의 그래프가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신단걸 말해줄 뿐이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나를 돌봐주셨다.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내 모든 첫 순간을 함께 해주신 분이었다.

문득 신혼여행중에 밤 해변을 걷다가 높이 떠 있는 달을 보고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할머니는 바로 그 날 돌아가셨다.

그때 달을 보고 느꼈던 그리움과 가슴의 울렁거림이 할머니의 작별인사였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턱 막히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버스 안에서 나는 내내 울었다. 공항 호텔에 가기전 나는 신랑에게 할머니 병원에 들렀다가 가자고 했는데, 그날 경황이 없던 신랑은 운전해주는 친구에게 호텔주소부터 말해줬다.

그게 원망스러워서 신랑을 때리면서 울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 역시 그때 조금더 고집을 피웠다면 할머니 병원에 들렀다 갈수 있었을텐데...

신혼여행에 다녀와서도 할머니를 볼수 있을것 같은 착각을 했다. 할머니는 나를 계속 기다려줄것이라고...은연중에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공항버스가 내리는 곳에 시어머니가 마중을 나와계셨다. 내 눈은 너무 울어서 떠지질 않았다.

시어머니가 잘 다녀왔냐고 물으셨는데 울음이 목 끝까지 맺혀있던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턱만 우르르 떨었다.

집에 가는 내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신랑도 내 눈치를 보느라 침묵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그 분위기가 못마땅 하셨나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가족은 이제 막 결혼식을 치뤘기에 사돈에게 초상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걸 몰랐던 나는, 시어머니가 잠시 내가 슬퍼할 시간을 줄줄 알았다. 그걸 믿고 우리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우리 방은 각종 풍선과 꽃이 매달려 있고, ‘환영해!’라는 문구가 써져있었다. 아기자기한걸 좋아하는 시어머니가 꾸며놓은 것이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그 마음은 알았지만 당시에는 슬픔이 너무 커서 감동할 새가 없었다. 그냥 화장대 의자에 앉아 히끅거리며 울었다.


“쟤는 이제 막 시집 온 새색시가 어디서 눈물바람이냐?”


시어머니가 신랑을 붙잡고 한 말이었다. 신랑에게 한 말이지만 실상은 나에게 들으라는 말이었다.

신랑은 시어머니를 진정시키며 가만히 계시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우는 사정에 대해 말해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면 시어머니가 좀더 나를 이해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마저 울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사정이야 어떻든 저게 지금 바른 짓이냐? 어? 왔는데 인사도 안하고!”


사정을 다 들었음에도 시어머니는 정색했다.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러가지 감정이 한데 얽힌 가운데 분노만을 건져내어 안방으로 쳐들어갔다.


“어머님 정말 너무 하시는거 아니에요?! 저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리 들은지 한 시간도 안됐어요! 근데 슬퍼도 못하나요?”


시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계시다가 나를 흘긋 보며 말했다.


“너 지금, 시집 온 첫날부터 시어머니한테 큰 소리 내는거냐?”


아아, 그랬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로써의 대접과 권리를 가장 먼저 상상했다. 그게 너무 강해서 내 전후 사정따위는 가당찮은 변명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그 차가운 눈빛과 말투에 진저리 치며 말했다.


“...확실히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네요.”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어쩌면 나는 시어머니가 나를 이해해주실꺼라고 믿었던것 같다. 신랑과의 오랜 연애기간을 지내면서 시어머니와도 서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고 받았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각자의 가족에 대한 마음이라던지...그러니 할머니에 대한 내 각별한 마음을 아실꺼라 생각하고 제대로 된 인사를 못드렸던 것인데. 시어머니 입장에선 고생해서 키운 아들이 결혼해서 색시를 데려왔으니 깍듯한 인사를 받을수 있겠지...하는 마음이 더 크셨던것 같다.

각자의 입장이 엉키다 끊어져버린 기분 나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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