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사심슨 Jan 09. 2020

시어머니에게 받은 첫 밥상

시집살이 개집살이 14

시어머니에게 받은 첫 밥상

우울했던 날들이 지나가고, 우리 집은 완전히 리셋 되었다.

시어머니는 다시 주책맞은 어른으로 돌아가고, 나는 철부지 며느리로 돌아갔다.


이제 우리는 집안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 포지션을 정해야 할때가 왔다.

지난편에도 언급했다시피 시어머니는 부엌을 가장 많이 쓸 사람은 나라고 하셨다.

나는 자칫 잘못 했다간 부엌떼기가 될수도 있겠다싶어 함부로 주방일에 참여하지 않으려했다.

왜 그런말도 있지 않은가. 시집에 가서 부엌일 이거저거 잘하는 척 해봐야 좋을것이 없다고.


다행히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돼었던지라 한 두끼를 외식으로 먹었다.

드디어 집에서 먹어야할 순간이 왔는데, 시어머니가 먼저 부엌에 가셔서 칼과 도마를 잡으셨다.

안방에서 재미있게 보시던 티비도 끄지 않은 채 시어머니는 요리에 집중하셨다.

서걱서걱, 치이익, 보글보글

음식이 완성되는 소리가 마치 3중주 음악회처럼 현란하고 듣기 좋았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건 남이 해준 밥상이다.

시어머니가 하는 음식에서는 아주 고소한 냄새가 났다. 마치 버터냄새 같았다.

음, 한식이 아닌건가? 김치를 써시는거 같던데....버터넣은 김치 볶음밥인가?


“밥 먹어라-!”

 

마침내 음식이 완성되고, 나와 신랑은 어린아이들처럼 식탁으로 가 앉았다.

시어머니가 하신건 김치 찌개였다. 그런데 왜 버터 냄새가 난거지?

나는 의아해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후룩-



헉! 이...이 맛은....!



밀도 있는 향기와 입술을 적시는 유분기...강렬한 인상...!

나는 내가 잘못 느낀거간 싶어 다시 먹어보았다.




아니다! 내가 느낀게 맞구나!

나는 잠시 수저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방황했다. 신랑도 심상치않은 맛이라고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다 뭐 넣으셨어?”


“코코넛 오일! 코코넛 오일이 사람한테 아주 좋다네-!”


보통은 코코넛 오일째로만 먹지 않나요...? 나는 김치찌개와 함께 이 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안방 티비에선 만물상인지, 엄지의 제왕인지...아무튼 어떤 생활 프로가 코코넛 오일에 대해 열심히 예찬하고 있었다.





이전 10화 폭풍이 지나간 자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