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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심슨 Jan 10. 2020

칼만은 안잡으려했건만..

시집살이 개집살이 15

칼만은 안잡으려했건만..

그로부터 시어머니의 음식은 더욱 다양하고 스펙타클하게 나왔다.

낫토를 넣은 고추장, 닭발 김밥,간이 안된 소고기 장조림 등...시어머니의 음식은 예측을 할수가 없었다.

특히 건강에 관해서는 과감한 시도를 멈추지 않으셨다.

한번은 아침에 건강주스라고 주셨는데 시큼하고 달큰한 딸기 냄새가 나서 딸기주스인가보다 하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런데 목구멍에 켁!하고 뭔가가 걸렸다. 엄청 큰 브라질 너트였다.

나는 사색이 되어 말했다.


“...어머님, 여기 혹시 뭐뭐 넣으셨어요?”


“딸기, 바나나, 그리고 몸에 좋다는 견과류!”


제대로 된 이름도 모르고 몸에 좋다고 하니 일단 넣으셨던것 같다.


“어머님, 근데 엄청 큰 덩어리가 목에 걸렸어요...”


“괜찮아! 안죽어~”

 

쿨하게 말하는 시어머니의 말투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혹시 지난번 일이 아직 앙금이 남아서...(?!)

아무튼 시어머니를 말려야했다. 맛도 맛이지만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하신답시고 낭비되는 재료들이 많았다.

시어머니 딴에는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자기 솜씨도 보여주고, 살림도 가르쳐보시겠다고 자세를 잡으시는것 같은데

나는 맛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재주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난 칼을 들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나는 요리 하는 걸 좋아한다. 귀찮더라도 제대로 차려 먹는걸 좋아하고, 나름 음식에 대한 개똥철학(?)이 있어서

밥은 압력 밥솥 냄비나, 돌솥에 해서 누룽지와 함께 먹는걸 좋아하고, 메인 반찬이 하나 있더라도 곁들임 국 한그릇 쯤은 꼭 있어야 한다.

또 산지직송, 제철음식을 좋아해서 봄에는 준치,미나리,실치, 쭈꾸미 등을 사다가 요리하고 여름에는 민어를 먹어야하고, 가을에는 낙지,활재첩,꽃게를 먹어야 하며 겨울에는 방어를 먹어줘야 한해를 잘 보낸 기분이 드는 케케묵은 아줌마다.


나는 칼을 들고 요리를 했다.

갈치 조림은 무를 먼저 조리고 다음으로 갈치를 익히면서 남은 양념엔 소면을 비벼 먹을수 있게 소면을 삶아서 내어갔고, 친정에서 막 올라온 김장김치는 반포기를 통째로 새우와 꽃게를 넣고 푹푹쪄 게국지로 만들었다. 심심하면 길다란 떡볶이 떡을 튀겨 떡꼬치를 만들고 튀기는 김에 고구마도 튀겨 맛탕을 만들었다. 대형마트에서 연어를 사다가 내 취향껏 두툼하게 썰어, 단촛물을 섞은 밥에 올리면 근사한 연어초밥이 되었다.


신혼 버프+준비된 돼지인 나가 합쳐져 우리집 식탁은 한동안 풍성했다. 신랑도 좋아하고, 시어머니도..,애써 티는 안내셨지만 아주 맛있게 드셨다.

자연스레 주방의 주도권이 나에게로 넘어왔다. 우려했던 부엌떼기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건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내가 만든 요리를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는걸 좋아한다는 것이 오랜 시간 나를 주방에 머무르게 했다.


어느 날은 티비에서 옛날 드라마 <보고또보고>를 방영하길래 생각 없이 보았다.

드라마 속에서는 주방일에 젬병인 금주가 큰형님 은주의 시집살이에서 벗어나고자 음식을 엉망진창으로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음식을 설익히고, 부러 짜게 만들었다.

그래봤자 노련한 큰형님 은주한테 걸려서 호되게 당했지만 말이다. 아니, 근데 설마....우리 시어머니도....?!


설마 그럴리는 없겠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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