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파게티
어렸을 때 우리집은 맞벌이었다.
엄마 아빠가 두 분다 일을 나가셨는데, 문제는 두 분중 누구도 밥을 해놓고 가지 않는다는게 문제였다.
기억나던 무렵이 내가 일곱살부터였으니...일곱 살 짜리가 밥을 할수 있을리 없었다. 여섯살짜리 동생한테 말해 무엇하겠는가.
엄마랑 아빠는 이 문제로 자주 다퉜다. 가부장적인 아빠는 엄마가 밥을 안해놓는다며 매정한 엄마라고 몰아세웠고, 엄마는 일하고 와서 피곤해 죽겠는데 집안일까지 하란거냐하고 대꾸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속으로 아빠 편을 들었다. 아무래도 그때는 더 옛날이다보니 밥은 당연히 엄마가 해줘야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사실 엄마는 수입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수 없는 일을 하셨다.(먼 훗날 나는 엄마가 다단계를 하셨단걸 알게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는 어떻게든 우리를 먹이려는 노오력~을 하셨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 아빠는 가부장적인 분으로...장가가기전까지 할머니에게 지극정성의 밥상만 받으셨다.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말을 정설로 들으며 살아오셨으니 할수 있는 요리가 전무했다. 그럼에도 아빠는 부엌에 들어가 우리에게 뭐라도 먹이기 위해 노력을 하셨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가 '짜파게티'다.
아빠가 해준 많고 많은 요리중에 왜 짜파게티가 기억나냐면 아빠의 요리중 실패한 적이 한번도 없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아빠의 짜파게티는 나름의 개성이 있었다.
아빠의 짜파게티는 라면보다 통통한 면에 꾸덕한 짜장 가루 덩어리가 드문드문 묻혀있었다.
한젓가락을 들어 먹으면 조금 불어버린 짜파게티면이 내 입속에서 동글동글하게 뭉쳐지고 굴러졌다.
게다가 중간중간 뭉쳐 있는 짜장가루 덩어리는 혀의 어느 지점에서 강렬하게 풀어지면서 짜릿한 msg폭탄을 느끼게 했다. (아마 아빠가 가루를 풀고 대충 섞어서 자꾸 가루 덩어리가 졌던것 같다.)
그리고 아빠는 짜파게티를 차려줄때 그 옆에 항상 흰 우유를 컵에 담아 주셨다. 먹다가 목마르면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짜파게티를 먹다가 흰우유를 먹으면 흰우유의 맛이 더 고소해지고, 짜파게티의 맛이 더 부드러워졌다. 그건 아마 내 입안에서 두 식재료가 어우러지며 시너지를 내서 그랬던것이리라 생각한다.
화룡점정으로 아빠는 짜파게티,우유...그리고 신 깍두기를 담아주셨다.
다들 알겠지만 짜장밥이나 카레를 먹을때도 신 깍두기랑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한국인이라면 알꺼라 생각한다. 독특한 향과 강렬한 간에 허우적되고 있을때. 그 두 자극 사이의 빈 공간을 꼼꼼히 메꿔주는 신 깍두기!
절여지고 발효되고, 고춧가루와 젓갈에 범벅된 무가 주는 친근함이란....이런 신 깍두기로 인해 그 밥상은 더 이상 인스턴트 밥상으로 느껴지지 않고 '맛있는 식사'로 굳혀 질 수 있었다.
요새는 워낙에 시중에 맛있는 짜장라면이 많아졌다. 직화구이 냄새를 오롯이 느낄수 있는 레토르트 자장면이나, 액상 춘장이 그대로 들어있는 짜장라면, 원조 짜장면집의 맛을 재현했다는 짜장라면 등...안목이 높아진 소비자의 취향이 반영되어 짜장라면들은 훨씬 고급화되었다. 나 역시 그런 시장의 변화를 환영한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어린 시절 먹었던 아빠의 '짜파게티'를 못 잊고 짜파게티를 산다. 그리고 일부러 짜장가루를 대충 섞어서 비빈다. 그 앞에는 흰우유와 신 깍두기를 차려놓고...그러면 어린시절 하루종일 배고프다가 먹은 서투른 아빠표 만찬에 행복했던 기분이 되살아나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