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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심슨 Dec 27. 2019

친정에서는 뭐래?

시집살이 개집살이 4

조선시대가 아닌 이상 세상에 어느 부모가 딸이 시집살이 하는걸 좋아할까 싶다. 내 시집살이가 결정난 후 엄마와 아빠는 각각 다른 온도차를 보였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친정집은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내 결혼준비를 도와줄 여력이 되지 못했다. 내가 가진 천만원으로 결혼 준비 및 간소한 혼수를 마련해야했다.

처음부터 시집살이를 생각했던건 아니었기에 신혼집 문제를 부모님과 상의했는데. 아빠는 힘든 형편을 미안해하며 말을 아끼시는게 다였다.

엄마는 집을 나누지 말고 그냥 시어머니랑 살라고 했다.


“야, 시어머니랑 살면, 시어머니가 너네 일 나갔을때 청소도 해주시고 나중에 애기도 봐주시고 얼마나 좋으냐.”


어리석은 나는 엄마의 말을 긍정적으로 믿었다. 엄마가 어떤 캐릭터인지 그때는 잠시 잊고 있었다. 아무래도 결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친정엄마는 사랑이라는 공식을 우리 엄마에게도 적용시켰던 것 같다. (시집살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엄마는 후에 나 몰래 신랑에게 집을 담보로 1억을 융통해달라고 한다. 이 일로 내가 잠시 엄마와 연을 끊은건 안비밀이다.) 외할머니까지 나서서 시어머니랑 살며 돈을 아끼라 했다. (후에 돈을 모아 남동생 결혼할때 수 천만원을 대주라고 압박하신것도 안비밀이다.)


나의 이런 처지를 제일 안타깝게 여긴건 우리 고모였다. 고모는 아들만 둘이었다. 딸을 너무 낳고 싶어했지만 셋째도 아들일까봐 차마 더 낳지 못하고 아들 둘 맘으로 살아오셨다. 그래서인지 내가 어렸을때부터 딸이 있다면 해주고 싶었던 것들을 종종 나에게 해주곤 하셨다. 공주님 가방을 사주거나, 계절별로 예쁜 옷들을 사오곤 하셨다.

고모는 우리집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내가 시집살이를 한다는 걸 들었을때. 어쩔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안타까워하셨다. 결혼 초에는 종종 전화를 걸어 내 안부를 물어보셨다. 특히 시어머니랑 잘 지내냐고를 많이 물어보셨다. 나는 고모가 걱정하실것도 염려됐지만 내가 힘든 결혼 생활을 한다하면 그게 부모님 흉으로 이어질까봐 애써 잘지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고모는 나를 보면 자기를 보는것 같다고 했다. 고모 역시 어려웠던 집안 형편에 시집 살이를 시작했는데 시할머니, 시부모님, 결혼 안한 시누이까지 다 같이 살았다고 했다. 시어머니랑 사는 것만도 가슴 끓을일이 많은데, 고모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로써는 상상이 안돼는 그림이었다. 고모의 솔직한 이야기에 나도 반쯤 솔직하게 말했다.


“어머님이 가끔 이해 안갈때도 있긴 한데, 그래도 잘해주세요.”


딱 이정도만. 나와 고모의 대화는 덤덤한 선을 지키며 끝났다.

대신 친정 엄마와의 통화에서 나는 솔직하게 나의 고충을 토로했는데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참 성격 이상하다! 그냥 네,네 하면 될껄 왜 그렇게 피곤하게 늘어지니?”


난 엄마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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