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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Jun 02. 2021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못했다.

엄마를 닮아가는 내가 싫었다.

몇 해 전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퉁퉁부은 눈으로 출근했었다. 그리고 한동안 엄마라는 단어를 껌처럼 씹고 다녔다. 나도 엄마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찾아다닐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엄마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내 엄마

기억 속 엄마는  누구나 생각하는 아련함이나 애틋함은 없다. 그저 엄마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내 엄마. 엄마는 나를 가지고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시절엔 보리쌀을 푹 삶아 쌀과 썩어 밥을 했다. 배가 고파 아무도 없는 부엌에

까실한 삶은 보리밥을 한 숟가락 먹으려다 할머니께 들켰다. 할머니는 엄마가 퍼먹던 보리밥을 쏟아 버리라고 말했다. 그냥 먹게 놔두면 안 되었나? 버릴 거면서...

뱃속에서 이미 알고 있었을 테지만 엄마가 해준 이 얘기로 나는 보리밥을 싫어하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기간이 길지 않아 모녀간의 깊은 정은 없다. 엄마의 첫아이로 태어났지만 세상 첫아이들이 겪는 그런 귀함이나 사랑은 받아 본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고, 시각장애인에게 팔을 내어주고, 실종아동 찾기 협회 일을 수년간 봉사했다. 내속엔 엄마가 있었다.


엄마를 닮아가는 내가 싫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진을 찍고 보면 사진 속에 엄마가 보였다. 닮기 싫어도 닮을 수밖에 없나 보다. 사나운 팔자는 닮지 말자고 주문처럼 외고 살았지만 그럴수록 더 닮아가는  나는 엄마 딸이 맞나 보다. 어떤 어려움이든 이겨 내려는 낙천적 성격은 엄마를 닮았다.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지나다 보면 평야를 만나겠지... 그래도 엄마를 닮아가는 내가 싫다.

"반찬은 뭘 해 먹나?"

"물김치, 총각김치 보내주게 주소 보내라~"

"백신 맞고 괜찮아?

요즘 엄마와 통화하면 예전 같지 않다. 내 속의 엄마와 친해지려고 노력 중인 게 느껴진다. 딸이 힘들 때 엄마가 더 힘들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엄마와 단둘이 여행 가기 버킷리스트를 적어둔 수첩을 보고 고민하는 나를 본다.

아무래도 엄마를 사랑하기 시작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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