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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Sep 17. 2021

JOB 이야기 2

추워도 아파도 따뜻했던 그해 겨울

찬바람이 살을 에는 새벽 5시는 이불속이 애인의 품속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양말은 두장을 껴 신었다. 살 떨리는 추위는 여전히 자라목을 만들었다.

​사무실에서 각자 일할 곳을 배정받아 현장으로 가면 함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평소 같으면 잠잘 시간이지만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몸 쓰는 일이라 먹어야 버텼다. 뜨거운 국물을 마셔둬야 한동안 덜 추울 테니까...

겨울 작업복은 우주복이라 일하는 동안 몸은 춥지 않았다. 얼굴은 방한 넥워머로 감싸면 어느 정도 찬바람은 막는다. 문제는 손과 발이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 두꺼운 장갑은 불편해서 얇은 장갑을 껴야 했다. 안전화 바닥에 핫팩을 붙이고 다녔지만 종일 따뜻하지는 않았다. 안산 아파트 현장에서 찬바람에 손, 발이 시리다 못해 아파 눈물이 났다. 어릴 때 동상에 걸린 손이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그 아픔을 손이 기억하고 말았다.

여자라서 불편했던 두 가지
현장에서 일할 때 가장 난감할 때는 화장실 문제다. 남자라면 다 알겠지만 돌아서면 화장실이 되었다. 낮은 층에서 일할 때는 화장실을 가면 되지만 고층이거나 화장실이 멀리 있을 때는 현장에서 해결해야 했다. 최대한 구석진 곳을 찾아 후다닥 볼일을 봐야 했다. 고층 현장에 간혹 이동식 소변기가 설치된 곳이 있긴 하지만 남자 작업자들용이라 나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뛰거나 숨을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또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우리 일의 특성상 이동하며 작업하느라 따로 사무실이나 전용공간이 없었다. 아무리 추워도 남자 작업자들은 길 위에서 갈아입었다. 다행히 나는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지만 넓지 않은 봉고차 안이라 상당히 불편했다. 여름엔 옷이 얇아 괜찮았지만 겨울옷은 우주복이라 부피가 커서 입고 벗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건설현장에서 쓰는 용어들은 일본어가 많다.
공구 이름도 그렇다. 요즘은 비계라고 하는데 흔히 막일판에서는 비계라고 부른다. 철봉을 타듯이 비계봉을 잡고 이동했다. 바닥에는 구멍 난 철판이 깔려있었다. 발이 작은 나는 가끔 철판 구멍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그날은 철판 위에 백업을 놔두고 옆에서 작업 중이었다. 그러다가 이동하면서 구멍에 발이 빠지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왼다리는 철판 위로 뻗었고 철판을 두 개 연결한 곳에 넓어진 구멍으로 발이 빠진 것이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저앉으며 지른 소리에 가까이에 있던 동료가 뛰어 왔다.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잡아 올려 주었다.
발목은 욱신거렸고 놀란 가슴은 요동을 쳤다. 동료는 물을 가져와 마시라고 주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바지를 올려 아픈 곳을 보니 발목을 지나 종아리까지 멍이 바로 들었다. 일어나 걸어보니 걷기는 불편하지 않았다. 찰과상으로 끝나 다행이었다. 지금도 오른쪽 종아리 위쪽은 상처가 없는데 만지면 통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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