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에서 오스트리아로 이동하는 시점부터 여행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여행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20일 가까이 계속된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 운전과 시간이 갈수록 그리워지는 한식 등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갔다. 뿐만 아니라, 정해진 일정 내에 렌터카를 반납해야 되기 때문에 지친다고 해서 어물쩍댈 수는 없었다. 그 때문인지 여행 막바지로 다가갈수록 여행지의 풍경보다는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고 맥주 한 잔에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보낸 저녁시간의 포근함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할슈타트를 지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바로 뮌헨을 거쳐 퓌센, 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쾰른 그리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저마다의 도시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 있고 다양한 문화, 예술품뿐만 아니라 여러 볼거리들이 있지만 이 도시들을 잠깐잠깐 스쳐 지나가야 했기에 많은 것들이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다만, 각 도시들에서의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감상과 기억들을 마지막으로 꺼내야겠다.
할슈타트에서 잘츠부르크로 도착하니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었다. 잘츠부르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다음 날 오전까지였고 많은 곳을 들를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관강객들이 방문한다는 모차르트 생가와 미라벨 정원만 빠르게 다녀와야 했다. 잘츠부르크 시가지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클래식 음악에는 1도 관심이 없는 친구들과 함께 모차르트 생가로 향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클래식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고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본 천재적인 작곡가이자 음악가이다. 그의 천재성은 어릴 때부터 반짝반짝 빛났고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다 밟으며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했다. 모차르트에 대해서 좀 더 쉽게 알고 싶다면 영화 '아마데우스'를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가 태어나 그의 유년시절을 보낸 도시이다. 물론, 그의 음악 생활의 주된 무대는 비엔나였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음악가 중 한 사람이 태어난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잘츠부르크는 그의 팬들에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도시이다. 이러한 팬들의 부름에 답하듯 모차르트가 실제로 살았던 집은 박물관의 형태로 보존되어있고 그가 머물렀던 장소, 사용했던 악기 등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머릿속에 '모차르트 생가'에 대한 기억은 많지가 않다.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사진으로도 남길 수 없었다. 다만, 특정 주제에 대한 박물관을 좋아하지 않는 탓('#9. 진수와 초콜릿 공장' 참고)인지 '모차르트 생각'에 대한 기억도 그리 좋지 않게 남아 있다. 모차르트 살았던 곳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상업화하면서도 그 속을 채우는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야말로 '생가'라는 것 외에는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장소였다. 물론, 나와 다른 느낌을 받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는 점만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모차르트 생가'를 나와 친구가 미리 찾아두었던 숨겨진 맛집으로 향했다. 'Bärenwirt'라는 잘츠부르크 로컬 맛집으로 그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이킹 잔에 나오는 맥주와 잘츠부르크 전통 디저트인 '잘츠부르크 녹켈른(Salzburger Kockerl)'이다. 잘츠부르크와 바이킹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이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면 마치 맥주캔의 윗부분이 뚫린 듯한 모양의 동그랗고 예쁜 잔에 맥주가 가득 담겨 나온다. 잔이 꽤 두툼하여 친구들과 열정적으로 건배를 해야 될 것 같은 그런 모양새이다. 하이라이트는 '잘츠부르크 녹켈른'인데 머랭으로 만든 빵으로 그 부드러움이 일품인 디저트이다. 맛도 부드러움의 끝을 보여주지만 외관도 마치 구름을 구운 듯한 모습이라 눈과 입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디저트이다. 잘츠부르크 여러 식당에서 파는 전통 디저트이니 꼭 이 식당이 아니더라도 잘츠부르크를 방문한다면 '잘츠부르크 녹켈른'만큼은 꼭 먹어보길 추천한다.
여행의 막바지가 되니 기름지고 느끼하고 부드러운 음식들이 물리기 시작했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한국에서 컵라면 등을 사 왔고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순간부터 매 저녁마다 절제하지 못하고 그것들에 손을 뻗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면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이 있었다. 바로 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리소토와 같은 음식을 제외하고는 쌀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또한, 외국에서 생산되는 쌀은 우리나라의 것과 품종이 달라 밥을 짓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느낌의 밥이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냥 라면만 먹을 수는 없었고 밥을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그나마 요리를 할 줄 았았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뜻 요리사 역할을 자처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야참과 안줏거리를 위한 재료를 구입했다. 다행히 유럽에서 머문 대부분의 숙소가 취사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요리를 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먼저 구입한 쌀로 밥을 안쳤다. 밥이 준비되면 컵라면에 물을 부으려 했고, 와인과 맥주에 곁들이기 위하여 식빵과 비스킷 그리고 과일잼을 활용한 아주 간단한 카나페도 준비했다. 미리 안쳐둔 밥에 뜸을 충분히 들이고 맛을 보니 다행히 한국에서 만드는 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맨밥을 먹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 온 볶음 고추장과 밥을 함께 볶았다. 이렇게 우리의 멋진 한 상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다 같이 친구가 여행 내내 추천한 영화 중 하나인 '친절한 금자씨'를 함께 보며 즐거운 저녁 그리고 심야시간을 보냈다.
비록 관광객이었지만 현지 사람의 집을 빌리고 함께 음식을 해서 먹으니 마치 이 곳에 사는 사람과 같은 느낌을 조금 받았다. 여행지에서 치열하게 다니지 않더라도 이런 소소한 경험의 의외로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여있었다. 아마 밤 사이에 눈이 내린 듯했다. 다시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차를 빼야 했는데 주택 주차장도 눈으로 덮여 본의 아니게 우리가 사는 집은 아니지만 눈을 쓸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집 앞에 쌓인 눈을 쓸어본 적이 없었어 기껏해야 군대에서 제설을 한 게 전부였다. 때문에 이런 것도 재밌는 기억 중 하나로 기억에 남는다.
다만, 미라벨 정원에 도착하니 정원 역시도 눈으로 전부 덮여있어 어디가 정원이고 어디가 도보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일 뿐만 아니라 형형색색의 꽃들이 무척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오로지 하얀 눈꽃만이 이 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나름의 운치도 있었지만 넓은 정원의 전역에 하얗게 물들어 있어 세부적인 곳들을 살펴보는 재미는 조금 떨어졌다. 다행히 우리도 이곳에 머무를 시간이 많지 않았고 가볍게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바쁘게 뮌헨으로 향했다.
짧은 오스트리아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독일로 향했다. 다시 돌아가는 독일의 첫 번째 목적지는 뮌헨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뮌헨이라는 도시 자체는 아니었고, 뮌헨에 있는 한 축구경기장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그곳은 바로 세계적인 축구 명문구단, FC 바이에른 뮌헨의 홈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였다. 이 곳은 FC 바이에른 뮌헨의 홈 경기장일 뿐만 아니라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개막식이 열린 메일 경기장으로도 유명하다. 이 구장의 매력은 그뿐만 아니다. 건축미에서도 아름다운 구장이며, 특히 해가 지고 야간이 되었을 때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구장의 외관이 무척 아름다운 경기장이다. 아쉽게도 마침 분데스리가의 겨울 휴식기였기 때문에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는 없었지만 경기장의 명성에 부합하듯 관광객들을 위한 경기장 투어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어 그렇게라도 경기장의 분위기를 느끼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부터 보이는 경기장의 모습은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몽실몽실한 질감이 느껴지는 듯한 외관 디자인이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투어를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좀 더 기억하기 위하여 이탈리아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구매한 AS로마의 저지를 입었다. 누가 봐도 열정적인 축구팬의 모습이었다. 조금 기다리니 FC 바이에른 뮌헨 구단의 관계자이신 금발의 노신사께서 나와 안내를 시작하였고 그는 경기장 구석구석으로 우리를 데려가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선수단이 탑승하는 차량이 내리는 곳부터 관중석까지 여러 장소들을 둘러보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선수들이 사용하는 락커룸과 경기장이었다. 우선 락커룸에는 개인별로 사물함이 따로 비치되어있었고 사물함 주인의 사진이 그 위에 걸려있었다. 때문에 누가 어떤 사물함을 사용하는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고 실제 경기가 있는 날 그곳을 선수들이 직접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액자 속 선수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이었고 '사비 알론소', '로벤' 등 좋아하는 선수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마침 가이드께서 투어를 진행하는 그 날이 '로벤' 선수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우리를 포함한 관람객들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로벤에게 축하를 했다. (물론 그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다음으로 경기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관중석으로 갔다. 특이하게 잔디구장 위로 묘한 기계가 설치되었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듯 가이드께서는 저 기계가 잔디를 최상급으로 유지해주는 기계라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선수들이 제 기량을 내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직접 밟고 뛰는 잔디구장의 상태가 매우 중요했고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구단은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낼 수 있도록 잔디 유지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설명해주었다. 실제로 로마의 경기장에서 본 잔디의 상태에 비하면 알리안츠 아레나의 잔디 상태는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 그 결이 곱고 일정했다. 저 잔디를 실제로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가이드께서는 함께 내려가 보자고 하셨고 덕분에 우리는 아주 가까운 위치에서 선수들이 직접 뛰는 경기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처럼 알리안츠 아레나 투어는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계 최고의 구단이 그들의 시설에 투자하고 있는 규모와 정성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축구팬들과 함께 투어를 할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친절한 가이드를 해준 구단 관계자와 함께 사진을 남기고 즐거운 축구 투어를 마쳤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저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우리는 아름다운 성이 있는 퓌센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