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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Apr 26. 2020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 누가 실격인가?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1948)


Prologue


    2017년 즈음 모든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고 나에게 닥쳐온 일들이 벅차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퇴근 후 돌아온 불 꺼진 집의 어둠이 금방이라도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때에 "인간 실격"이라는 책을 처음 읽었다. 그때의 어두워져 가는 나의 모습이 마치 소설의 주인공 '요조'처럼 될 것만 같았고 그에 대한 반작용인지 오히려 요조의 신세를 더 강하게 부정했다. 그가 부적응자이며 낙오자라고, 그리고 그가 실격한 것이라고.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인간 실격을 다시 읽었다. 다시 만난 요조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정의한 인간과 어울리기 위하여 애쓰던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고 진정 실격한 것이 누구인가를 다시금 고민하게 했다.


이야기


    소설 "인간 실격"은 주인공인 '오바 요조'의 서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요조는 남과는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릴 때부터 인간과의 관계에서 혼란을 느낀다. 게다가 온전히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요조는 인간에의 마지막 구애로서 익살 짓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인지 요조는 그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나 하인에게 어린아이에게는 잔혹한 꼴을 당하고 그는 이를 밝히지 못하고 스스로 감내한다. 결국 그는 서로 속고 속이는 인간들에 대한 난해함 끝에 고독을 택한다.

    요조는 익살꾼이라는 자신의 기술이 간파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몇몇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간파당하고 그러한 인간에의 두려움과 공포를 감추기 위해 친구 '호리키'의 권유로 술, 담배, 매춘부와 좌익 사상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들은 요조에게서 추악한 인간사로부터 해방감을 주었지만 그 또한 완전히 못했다. 세상의 속박들로부터 완전히 피할 수 없음을 느낀 그는 결국 한 유부녀와 동반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하고 혼자 살아남은 요조는 자살 방조죄로 추궁받게 된다. 다행히 아버지 지인의 도움으로 석방되지만 그의 정신은 더욱더 혼란스러워진다.

    고등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받고 인수인의 집에 체류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가출한다. 이후 그는 아이 딸린 여자나, 바의 마담 등과의 파괴적인 여성 관계와 동시에 절망적인 삶에 빠지게 된다. 이후 마지막으로 원했던 순결한 여자 '요시코'가 근처 상인에게 범해지는 것을 본 그는 절망의 끝에 빠져 술에 절어 지내다가, 어느 날 밤 수면제를 이용해 발작적으로 다시 자살미수를 일으킨다.

    어떻게든 살아났지만 그의 육체와 정신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결국 그는 인수인과 호리키에 의하여 정신 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하고 그는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고 평가한다.


요조의 익살과 세상


    요조에게 익살은 인간에 대한 최우의 구애였다. 처참히 망가지기 이전의 요조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단념할 수는 없었다. 그런 요조가 인간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익살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불안과 공포의 대상인 인간을 웃게 만드면서 그 자신도 안정을 느낀다. 예전에는 인간에게 공포를 느끼는 요조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책을 읽으면서 요조가 인간에게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이유를 생각했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요조에게 인간은 위선 그 자체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전체에서 요조는 그와 인간을 완전히 구분하며 마치 그는 인간이라는 부류에 속해있지 않는 것처럼 서술한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그의 관점에서 인간은 불온한 존재이며 오히려 자신이 솔직하고 온전한 존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인간이라는 존재로 가득하며 이런 세상에서 요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또한 불온한 존재가 되어야 했고 이로 인해 선택한 그의 유일한 '인간'적인 모습이 바로 익살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익살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웃기려고 '일부러' 하는 말이나 몸짓"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익살 자체도 솔직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익살은 온전히 의도된 행동이며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요조는 익살을 통해 일차적으로는 인간으로부터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잠재웠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가 이해할 수 없었던 속고 속이는 인간의 모습을 익살을 통해 스스로 인간처럼 행동함으로써 그들과 어울리려 노력한 것이 아닐까.


위선


    인간의 위선적인 모습은 요조에게 난해하게만 다가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역시도 인간과 어울리기 위하여 익살이라는 꾸며진 행동에 의지한다. 하지만 인간과 요조가 다른 점은 인간은 위선적인 행동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못해 인간의 삶은 위선으로 가득한 반면 요조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익살이라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고통을 느끼며 결국 술, 담배, 매춘부, 좌익 사상 등에 빠져들게 된다. 인간은 위선을 견딜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순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요조의 모습에 아쉬움이 존재한다. 한 번이라도 주위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살았다면 그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작품 말미에 깨달은 것처럼 "세상은 개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이라기보단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요조에게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비단 요조뿐만 아니라 인간은 왜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 의식하며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위선이 너무나 당연해진 상황에서 위선을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이러한 점을 고민하게 만들었으며 나의 답은 위선은 거짓이 아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순수한 그 자체로서의 자아가 있다. 하지만 성장을 하면서 여러 배경에 따라 그 자신이 투영되고자 하는 제2, 3의 자아를 만들고 걔 중 일부가 위선이라는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위선을 단순히 거짓이라고 하기엔 그 위선을 만든 본래의 의도, 곧 자아를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위선 이면의 목적 역시도 내 자아가 만든 것이며 위선을 부정하는 것은 본래의 자아도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작품 마지막 정신병원에 입원한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 실격'이라 얘기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요조'가 '인간'으로부터 실격당한 것이다. 위선적인 인간의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요조는 스스로 더 이상 인간에 섞일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이것을 비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요조는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혹은 그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시점에 그가 인간으로 실격되었음을 인정함으로써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과는 다른 순수한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한 것이 아닐까.


두 번째로 요조에게는 자신이 오히려 더 순수한 '인간'다운 존재이다. 요조는 인간과 자신을 구분 지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어쩌면 자신만이 참된 인간다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정 실격한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순수함을 잃은 요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인간 실격"은 인간으로서의 순수함을 잃으면 우리 모두가 실격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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