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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Mar 24. 2019

[에세이] 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

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
사람, 조직 그리고 문화

    나는 지금 인사 조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채용, 인사제도 등에 대해서 담당했으나 올해에는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 일은 바로 우리 조직에 바람직한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져가지만 사실 이 업무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땐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수많은 사람이 모인 조직의 문화를 조성하는 일은 나에게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가 있겠는가. 모 아니면 도라도 어찌 되었든 한 번 해볼 수밖에.


    그렇게 이번 주 조직문화와 관련된 첫 발걸음으로 제주도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워크숍이 끝난 지금에는 마음이 편하지만 사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제주도로 가는 것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었다. 특히, 제주도로 가는 길은 정말 쉽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나빠진 제주 날씨로 인해 출발 저녁 항공편이 모두 결항이 되었고, 다음 날 아침까지 제주로 가야 하나 아침 비행기는 이미 모두 매진이었다. 이제 와서 일정을 취소할 수는 없었고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제주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은 아침 항공편이 아직 남아있는 지역으로 이동하여 숙박한 뒤 아침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고, 마침 울산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을 예매할 수 있고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KTX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한 나 자신이기에, 평소에 웬만하면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울산으로 가는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5년 만에 울산에 가본다는 생각에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 워크숍 준비가 미진하여 걱정스러운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밝은 구성원들의 표정과 적극적인 태도에 걱정은 점점 사라져 갔다. 구성원들이 조직문화에 대해 이리 적극적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반대되는 상황은 더 감명 깊게 다가왔다. 앞으로의 활동에 힘이 실리는 듯했다. 사실 결과물 자체가 참신했던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답안들이었지만 마음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렇게 작은 마음이 모여만 준다면 못 할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마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내가 먹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워크숍에서의 이 경험 외에도 이번 제주에서 나에게 '일체유심조'를 느끼게 해 준 이야기는 또 있다.




드디어 한라산에도 봄이 왔어요

    워크숍 일정이 끝나고 주말이 껴있어 잠시 여유시간을 가졌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이루었기에 대단한 것을 하기엔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제주도민에게 추천받은 어렵지 않다는 오름을 잠시 오르기로 했다. 지난 2월 한라산 영실코스를 등반했었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한라산의 모습이 펼쳐져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인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눈옷을 입은 나뭇가지들은 이제 앙상한 모습만 남아 있었고, 코 끝에 쨍하니 다가오는 늦겨울의 바람은 서늘하게 다가왔다. 눈에 담기는 풍경들이 인상적이지 않았기에 오로지 오른다는 마음으로만 끊임없이 걸었다.


    오름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무 기둥 옆에 쪼그려 앉아 사진 촬영을 하는 분을 지나치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마침 그분 옆에 놓여 있는 배낭과 그 위에 붙여져 있는 '탐사활동'이라는 작은 문구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괜한 호기심이 생겨 무얼 촬영하고 있는지 여쭤봤는데 그분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이 오름을 오르는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었다.


개감수라는 꽃이에요. 이제 막 꽃이 피려고 하네요.
드디어 한라산에도 봄이 왔어요.
한라산의 3월은 겨울의 끝자락이지만 이 꽃과 함께 봄이 시작되겠네요.


    사실 등산로 입구에는 이곳의 야생화, 동물들, 꽃 등등 각종 안내판이 흔하게 보인다. 한 번쯤 읽어 본 다곤 하지만 지금껏 그곳에 실린 주인공들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그저 텍스트를 수용만 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이 분의 말씀 하나로 오름을 오르는 즐거움이 생겼다. 정상이라는 목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는 꽃과 같은 과정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산을 오르며 혹시라도 귀한 것들을 놓칠까 구석구석을 살피며 올라갔다. 덕분에 나무 밑 응달에 피어있는 얼음꽃들로 발견하고 '새끼노루귀'라는 하얗고 작은 귀여운 꽃도 찾을 수 있었다. 한라산에 계절의 변화가 찾아왔지만, 동시에 내 마음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어승생악에서 발견한 「새끼노루귀」




앞으로...

    향후 일 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일을 맡게 되었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험으로 그 또한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물론 일을 진행하면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분명히 있겠지만, 바꿀 수 없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내 마음에 기대 보아야겠다. 이러한 내용을 단 몇 줄로 잘 표현해주는 시가 있어 인용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노를 젓다가>,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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