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내 모습

과거의 쓴 글을 보며 지금의 내가 하는 생각

by Bro park

매주 월요일 저녁 8시. 온라인에 모여서 1시간 동안 글을 쓴다.


정기적으로, 그것도 누군가와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어떤 글을 쓸지, 그 글의 내용을 어떤 순서로 전개할지 생각하는 시간 덕분에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분량의 글을 쓰게 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무슨 글을 쓸지 고민한다.


신기하게도 어떤 글을 쓸지를 생각하다 보면 일상의 경험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더 깊게 관찰하게 된다.

글감을 찾는 과정 속에서도 배움이 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관점이 바뀐다는 당연하지만 자주 잊고 사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다시 오늘의 글쓰기 주제로 돌아와서…


과거의 나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았을까 궁금해졌다. 예전부터 틈나면 뭔가를 끄적였는데, 그때의 글 중 하나를 소환해 보기로 했다. 재미있을 것 같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17년 어느날. 나는 첫 명함을 사용했던 회사를 나오며 "명함이 없는 진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글을 썼다.


사회초년생이었지만 창업을 한 상황이어서 나는 명함을 쓸 일이 많았다. 낯선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명함을 건네는 일이었다. 명함 안에는 내가 일하는 회사, 내 직함, 연락처, 이메일 주소 등 '일하는 나'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명함을 건네받은 사람은 그 속에 담긴 정보로 나를 인식했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서였는지, 그때의 나는 명함 속에 있는 내가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어떤 일을 잘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지가 그때 나의 주요 관심사였다. 명함에 적힌 직함이 곧 나의 정체성이었고, 회사에서의 성과가 곧 나의 가치였다.


3년간 오직 '일하는 나'로만 살다가 일을 그만두게 되니, 나는 핸들이 고장 난 자동차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 채 관성에 이끌려 달리기만 하는 상태였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움직이는 물체에는 관성이 존재하는데, 열심히 달릴수록 그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달린 만큼의 힘이 필요하다고. 열심히 멈춰야 한다고 말이다.


그때의 나는 그걸 몰랐다. 열심히 달리다가 경주가 끝났는데 어떻게 멈춰야 하는지를 몰랐다. 답답했던 마음을 풀 곳이 없어 그 당시에 글을 끄적였었나 보다.


나는 '일하는 내가 아닌 나'의 모습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것을 기대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들을 던지던 8년 전 나의 모습을 2025년 6월의 내가 다시 바라보고 있다.


8년 동안 그 질문들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러 번의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면서 말이다. 답이라고 해봤자 그때 당시의 답이었겠지만, 어쨌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는 충분했다.


하지만 8년 전 내 모습을 돌아보니 여전히 나는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가 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반응하고, 내 소개의 상당 부분을 직업이 차지한다.


잠깐, 상상해보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해보자. 아니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는 나를 상상해보자.


인생에서 일에 대한 의미를 크게 두는 것은 나라는 사람의 본래 특성일까, 아니면 이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든 걸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여전히 일 너머의 나를 충분히 탐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8년 전 내 모습을 보며 작은 다짐을 해본다.


내게 8년 후가 허락된다면, 그때는 오늘 같은 생각을 덜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일하는 나' 말고 다른 정체성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왜 그러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아직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 자체가 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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