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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24. 2021

19. 비 의도적 개과천선

결국에는 내가 선택한

 오전 7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하루 1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저녁이 되면 12시 전에 잠에 든다. 이틀에 한 번 글을 쓰고 꾸준히 업로드한다. 가끔은 크로키 연습을 하고 쓰고 싶은 소설의 개요를 짠다. 저녁이 아니면 침대에 잘 눕지 않고, 군것질도 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보면 성실하고 삶을 사는 사람이라며 칭찬할 법한 이 하루는, 놀랍게도 최근 나의 일상이 되어있다.


 물론 나는 원래 이렇게 살지 않았다. 서 있는 것보단 앉아있기, 앉은 것보다는 누워있기라는 기본 마인드를 철저히 지키며 최선을 다해 게으름을 피웠다. 기상 시간은 주로 10시에서 11시, 취침 시간은 새벽 3-4시. 이불속에 묻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유튜브와 SNS밖에 없었으나 어떻게든 재미를 착즙해 새벽을 지새우곤 했다. 밥은 먹고 싶을 때 먹고, 달달한 군것질을 자주 했다. 가장 잘하는 운동은 숨쉬기. 하루에 300 보도 걷지 않은 날도 종종 있었다. 동면만 안 했다 뿐이지 겨울을 맞은 동물처럼 굼뜨게, 게으르게 시간을 보낸 셈이다.


 여기까지 문자 그대로 보면 게으름을 피우던 사람이 성실하게 광명을 찾은 느낌이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내 하루가 비교적 촉박하게 조여진 것은 내 의도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침 배식이 일찍 이루어져서다. 자칫 늦잠이라도 자면 점심때까지 고픈 배를 쥐고 기다려야 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1시간 이상 운동을 하는 이유는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져서이다. 글쓰기도 비슷한 맥락으로, 그걸 하지 않으면 도무지 시간이 가지 않는다. 군것질을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없어서이고, 일찍 자는 것은 그때쯤에는 몸이 지쳐 자연스럽게 잠이 오기 때문이다.


 새삼 쓰고 보니 우습다. 이토록 하찮은 일상이라니. 이렇게 별 볼일 없이 굴러가는 하루를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에 던져놔도 되나 싶다.


 부지런해진 소감은 별 거 없다. 일찍 일어나는데 익숙해지지 않아 오전에는 정신이 멍하고, 갑작스럽게 시작한 운동 덕에 근육은 모르겠고 근육통은 알차게 얻었다. 항상 입에 달고 살던 군것질을 하지 않음으로써 살이 빠지는 것을 바라기엔 매일매일 야무지게 세 끼를 먹고 있다. 이틀에 한 번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글쓰기는 메말라가는 언어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에 가깝다. 하루에 혼잣말을 합쳐도 누군가와 전화 한 번 하지 않으면 거의 열 마디도 하지 않는 척박한 일상을 살아내려면 이 정도는 필요하다.


 왜 그렇게 억지로 바뀐 일상을 사느냐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아침이 일찍 나오더라도 그걸 포기하고 다른 방법으로 끼니를 때우면 되는 것이고, 시간이 가지 않으면 다른 새로운 취미를 만들면 된다. 군것질이 하고 싶으면 밖에 나가 사 오면 되고, 외롭다면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면 된다. 낯설다면 주변을 돌아다니며 익숙한 공간을 구축할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에는 이토록 수많은 반문이 붙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그저, 내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있다고 답하겠다. 다른 방법으로 끼니를 때우고 주변에 나가기엔 질병과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삭이지 못했으며,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지금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아직은 벅찬 일이라고. 이곳에서의 규칙에 맞는 삶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서, 그걸 깨고 새로운 책임을 지겠다 말하기엔 솔직히 겁이 난다. 그래서 나는 내 의도에서 빗겨 난 삶의 양상을 선택했다.  


 앞으로 내 일상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기면 이전의 일상을 다시 끌어올 수도 있고, 이곳에서의 삶이 당연한 습관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 물론 그 어느 쪽이 낫고 못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지금보다는 이곳에 익숙한 삶을 살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당연해진, 새로움이 버겁지 않은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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