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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22. 2021

18. 서울 상경

일생의 목표는 생각보다 허망하게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도합 19년을 이사 한 번 가지 않고 한 동네에서 살았다. 다른 학교에 진학하더라도 길거리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치는 게 비일비재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알고 보면 하나 건너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았다. 익숙하다 못해 지겨웠던 거리를 떠나 서울로 상경하고 싶었던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었다.


 제주도 탈출. 우리는 타지방으로 대학을 가는 것을 그렇게 불렀다. 대개는 서울을 일컬었다.


 서울은 단순한 타지가 아니라, 이제껏 살아온 환경에선 꿈꾸기만 했던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대학을 가려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던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무의식적으로 서울의 대학과 거리를 꿈꾸곤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더욱 확실해졌다. 또래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20대는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며 공부에 지친 학생들을 구슬렸다. 반은 맞는 말이었다. 더욱 다양한 것을 경험하기 쉬운 공간은 맞았으니까.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해 끝이 보이지 않는 힘겨운 입시를 겪으면서도 항상 그리던 인 서울을 이뤄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대학이 목표였는지 그저 서울에 살고 있는 나를 원했는지는 모호하다. 어쩌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다.'라는 수식어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의 나에게 진학할 대학의 이름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친구, 선생님, 부모님, 형제, 친척…. 내 주변의 모두가 내가 서울에 가기를 바랐다. 마치 그때의 정해진 행복과 성공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지금, 나는 서울에 있다. 서울 강북구의 끝자락에서 북한산을 등지고, 약간은 한적한 거리를 낀 어느 건물의 불빛 중 하나를 맡고 있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나는 아직 새로워지지 못해서, 고향에서 듣던 노래를 들으며 예전처럼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다. 서울에 닿기만 하면 얻을 수 있을 것 같던 행복과 성공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일평생의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한 기분은 미묘하게 씁쓸하다. 비단 타지에서 혼자 시작하는 삶이 외롭고 낯설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에 오면 모든 게 성공적으로 바뀌기라도 할 것처럼 설레어왔던 마음이 쓰고, 나름 평생을 들여 찬란하게 행복하리라 다짐했던 지금이 꽤나 초라해 또 쓰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닿은 이곳이 낙원이 아닌 조금 더 넓은 출발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물론 서울에 닿은 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풋내기가 할 소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생면부지의 타지에 떨어졌다는 무력감과 온갖 새로운 것들의 낯섦이 아직은 조금 당황스러운 것을.


  아무리 좋은 땅에 화분을 옮겨준다 해도 그 초목이 거대하게 자라기까지는 수많은 힘듦이 있겠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일까, 나는 이곳에 내가 대성할 수 있는 양질의 흙이 깔려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더 이상 이곳의 이름을 꿈꾸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음에는 감사하기로 했다.


그래, 어찌 되었든 나는 서울에 왔다. 부디 이곳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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