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내가 택한 이와 가족이 되는
가족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 중에 그 누구도 내가 직접 택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동거는 내가 택한 이와 가족이 되는 거다. 동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사랑할 이를 택했고, 그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사는 것.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랑하는 이를 매일 볼 수 있는 축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뒤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보이는 것만 보기로 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계획형 인간이다. 사실 계획형이라는 건 갑자기 마주한 일에 대비하고 싶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전혀 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사건을 대처하는 게 두렵다. 그래서 이런저런 대비책들을 세우곤 한다. 동거는 살면서 처음 해보는 것이었기에 나를 불안하게 하기엔 충분했지만 충동적인 마음을 따라보기로 했다.
J는 나와 닮은 점이 참 많다. 하지만 안 닮은 것도 참 많다. 우리는 예의를 중요시하고, 논리적으로 무언갈 파악하길 좋아하고, 스스로를 채워나가는 데서 기쁨을 발견한다. 반면 J는 생각하는 걸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나는 그러지 못한다. J는 또 생활력이 강하진 않지만 나는 7살부터 내 도시락을 씻어 등원했기에 생활력 하나는 자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닮은 듯 달라서 잘 섞이고 잘 붙는다.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았다. 서로 물을 주며 자라날 테니까.
사실 살면서 동거는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건 줄 알았다. 동거의 끝을 감당해 낼 수 있고, 동거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으며 동거에 대한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줄 아는 씩씩한 사람들이랄까. 나는 작은 일에도 잘 흔들리고, 고난에 허우적대며 남한테 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나도 동거를 시작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아마 J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남자니까. 그리고 나도 그를 움직이게 하는 여자일 테니까.
5년을 혼자 살았는데 고작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냈다고 이제 혼자 사는 삶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눈을 뜨면 그가 내 옆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일, 같이 맥주를 먹고 양치를 하는 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일, 그런 것들이 없다면 내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이젠 두렵다. 더 살아보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나는 감히 잘하지 않는 확신을 해본다. 우리는 같이 있을수록 더 견고해질 것임을.
지금도 거실에서 글을 쓰는 내 눈에는 방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게임하는 J가 보인다. 극문과인 나와 극이과인 J는 이마저도 다르다. 하지만 달라서 서로가 더 신기하고 대단해 보인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경이롭고 고단한 길을 나란히 걸어갈지 생각하면 들뜬다. 잘 부탁해,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