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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정 May 15. 2024

길 위의 연인들에 관하여

다른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편은 아니다. 앞만 보고, 혹은 땅만 보고 걷는다. 한국에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건 꽤나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문화사대주의라거나 한국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가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하거나 싱긋 웃어주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그저 상대의 차가운 표정과 나의 굳어지는 표정만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 되기에 구경하지 않는 걸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을 보고 걷다 보면 길 위의 많은 연인들을 마주친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서로를 향해 웃거나 서로를 향해 화를 퍼붓는 다양한 모습의 연인들을. 그럴 때마다 나는 나쁜 생각에 잠긴다. 다정한 연인들을 보면 그들의 사랑이 잠시뿐일 거라 생각하고, 다투는 연인들을 보면 역시 사랑은 다 그런 것이 아니겠냐며 수긍해 버린다. 나의 사랑이 지금껏 그래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형태는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누굴 만나도 다 비슷할 거라고. 


 그런데 나에게도 '다른' 사랑이 찾아왔다. 나는 반복되는 일을 못 견디고 무언가에 빨리 질린다. 그런 나에게 '다르다'는 건 엄청난 몰입을 가져온다. 그런 나를 끌어당긴 사람이 바로 J다. 내가 택한 나의 가족 J. 그는 다른 남자들과 아니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나는 잘생긴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다. 유전자가 외적인 모습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은 나머지, 성격이나 내적 견고함을 빚는 데는 비교적 힘이 빠졌을 거라는 생각. 그래서 이 남자도 얼굴값을 할 줄 알았다. 


 J는 다정한 사람이다. 잘생긴 얼굴 탓에 친절함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보다 7년을 더 살았기에 따뜻함이 차가움을 이긴다는 걸 깨달은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상냥하다. 남들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보인다. (물론 상대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는 가정 하에...) 그의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들이 좋았다. 그의 진정성도 한 몫했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만났기에 어쩌면 평소에 보이지 않을 대담함을 드러냈을지도 몰랐다. 알코올이 없이 만난 그는 잔뜩 긴장했고,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처음에는 나를 놀리는 줄 알았다. 긴장한 척하면서 이런 경우가 처음임을 어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손을 적신 땀은 그가 실제로 긴장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는 쉽게 나의 신뢰를 얻었다. (그는 몰랐겠지만)


 그것 말고도 자기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점,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점, 강아지를 사랑한다는 점, 내가 던지는 어이없는 주제에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점 등등, 내가 계속해서 그에게로 기울게 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다른'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나에게 맞는 '특별한' 사람이 있음을 안다. 그리고 길 위의 연인들의 사랑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되레 그들의 사랑이 견고하길 빈다. 다들 자기만의 사랑을 하고 있길, 누군가와 다른 모습의 마음을 나누고 있길 소망하게 된다. 그 특별함을 더 많은 이들이 느꼈으면 좋겠으니까. 행복이 넘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편안했으면 하니까.


 지나치는 많은 연인들을 응원한다. 이 글을 흘려볼 여럿 이들의 사랑을 지지한다. 나와 J가 서로를 만나 고집스런 마음을 다듬었듯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음을 자시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에, 그 걸음이 닫는 길 위에 사랑이 꽉 차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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