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정 May 16. 2024

사랑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모두가 놀란 나의 동거

 사랑이 뭔가. 이전의 글에서도 스스로 물었다. 뭐때문에 이렇게 사랑에 대한 글을 쓰는 걸까. 또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사랑은 여러 형태로 존재하지만 남을 나의 가족처럼, 나처럼 여기게 된다는 건 참 거룩한 일인 듯하다. 어느 순간 또다른 나처럼 간주되는 사람때문에 내가 봐왔던 나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어 가니까. 그런 변화를 다복스럽게 여기게 되는 것, 그 순간 사랑의 가치에 눈을 뜰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까지 해봤다. 이런 말들을 많이 쓰지 않는가. 오늘은 그 앞에 사랑이라는 조건을 걸어봤다. "사랑때문에 이렇게까지 해봤다." 하는 것들. 나는 사랑때문에 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랑<<<<<나 였으니까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내가 발전하는 모습, 나의 가치. 이런 것들에 매몰되어 살아왔다. 다른 누구와도 평생 함께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과 이 생만큼은 끝까지 함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나말고도 남은 생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어떨까. 그럼 나를 대하듯 그를 대하게 되겠지. 그래서 내가 그러고 있다. 내 생각을 하던 시간의 절반을 J를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사실 대단한 건 아니어 보일지라도 어쩌면 누구도 그러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이 쓸모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다. 사랑엔 보증이 없으니까.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믿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만큼의 기개가 필요하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나의 안목을, 나의 혜안을 믿는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틀렸을지라 해도 괜찮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런 도전은 충분히 하염직했다.


 동거도 그런 용기에서 출발했다. 내가 나와 사는 게 당연하듯 J와 사는 삶도 내겐 당연했다. 나를 돌보듯 그를 돌보고, 나를 먹이듯 그를 먹인다. 나를 재우듯 그를 재우고, 나를 생각하듯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도 내게 그러하다. 내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든 그가 있어 내 삶은 두 배로 즐겁다. 물론 두 배로 슬프기도 하지만 감정의 폭이 커진다는 건 세상을 더욱 생생히 느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내게 마땅한 일이다.


 스스로를 설득하는 게 가끔 남을 납득시키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내가 나를 긍정하는 순간 어느 때보다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나의 결정에 일렁이지 않는다. 바람이 파도를 불러일으킨다면 나는 바다가 아니라 바람이 되겠다. 사랑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도,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바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전 04화 길 위의 연인들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