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너를 만났다.
#너를 만나러 가는 길, 열두 번째
by 도레미파솔라이프니치 Jun 23. 2020
40주 1일, 새벽 12시 35분.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밑에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새, 속옷을 적셨다. 글로만 봤던. 양수가 터졌구나.
순간 어제 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37주부터 정상분만이라 아가를 만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 주씩 지나갔고, 산부인과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은 아가는 내려올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걷기 운동을 권장하셨다.
조산기로 5일을 입원하고 37주까지 누워서만 생활해서인지, 38주부터 걷는 건 나에게는 힘들었다. 그래도 아가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38주에는 5000보를, 39주부터는 만보와 계단 걷기를 하였다. 배가 나올수록 걸을 때마다 배뭉침이 심해졌고 걷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40주 예정일이 되었다. 전날 아가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엄마는 나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산길을 조금 걸어보는 게 어떻냐고 하셨다. 예정일 아침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신랑과 산길을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걷기 전에 인근 식당에서 소고기로 가득 배를 채우고 산의 입구에서부터 조금씩 걸었다. 산의 입구는 경사가 거의 없고 완만해서 산책하기에는 좋았다. 배가 뭉치면 멈추기를 반복하며, 2시간의 산책이 끝나고, 인근에 언니 집에 조카를 보러 갔다.
"처제는 지금 여기 올 때가 아니고,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언니 집에 놀러 가자, 형부의 첫마디였다. 언니는 오늘 저녁에 갑자기 신호가 올 수도 있고, 지금 당장 올 수도 있다면서, 아가가 나올 때를 알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그렇게 언니 집에서 놀다가, 시누이 집에도 놀러 갔다. 아주버님도 형부와 같은 반응이셨다. 그렇게 놀다가 집에 저녁 10시에 들어갔다. 그때까지 가진통도 없었다. 내일 진료 때는 유도분만 날짜를 잡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신랑과 하고는 잠이 들었다.
잠을 자던 중에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주르륵 무언가가 흘렀다. 화장실에 소변을 보기도 전인데 계속 흘렀다. 양수가 터짐을 직감하고, 신랑을 깨웠다.
"자기야, 지금 병원 가야 할 거 같아! 양수가 터졌어"
병원에 전화를 하니, 출산 가방을 챙겨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양수가 터짐과 동시에 조금씩 생리통처럼 배가 주기적으로 아파왔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양수가 터졌고, 진통이 시작된 걸 보시고 아직은 경부가 1cm밖에 열리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하나씩 진행될 거라며 오늘 아가를 만날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9시간이 지났지만, 경부는 1cm에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분만유도제를 쓰기로 했다. 분만유도제를 쓰면서 진통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신랑의 손을 꼭 잡고 호흡을 반복했다. 우리는 아가를 곧 만날 거라고 조금만 참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유도제 이후 2시간마다 내진을 했지만, 경부는 1cm만 열려있었다. 그렇게 12시간이 지났다.
21시간 동안 진통이 왔고, 강도도 세졌지만 경부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양수가 터진 지 거의 하루가 돼가고 경부가 더 이상 열리지 않자, 수술을 제안하셨다.
그렇게 22시간의 진통을 끝으로, 제왕수술을 했다. 인생의 첫 수술이라 무서웠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곧 아가를 만날 테니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다독여 주셨다.
자연분만을 못해 속상하긴 했지만, 22시간의 진통에 너무 지쳤고, 아가를 곧 만난다는 생각에 수술대 위에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남편분, 산모님께 계속 말 거세요~"
라는 말이 들려왔다. 수술이 끝났구나. 신랑은 아가가 너무 이쁘다는 말로 시작해 엄마랑 언니랑 통화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가가 간호사의 품에 안겨서 왔다.
너였구나~. 내 뱃속에서 발로 차던 아이가
마취가 덜 풀린 상태에서 본 아가는 신기하기만 했다. 눈코 입도 신기하고 울고 있는 모습마저도 신랑은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 아가가 너무 이쁘지 않냐면서 좋아했다.
그렇게 아가는 세상으로 나와 우리의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