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달, 임신이라는 긴 여행 끝에 다가와 어느덧 출산을 1주일 앞둔 상황이 왔다.그동안 처음 경험하는 출산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무섭고 두렵지만, 이제는 바깥세상에서 아가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아가를 기다리는 것은 내 마음만이 아니었다. 나의 몸도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하나씩 변했다. 배가 점점 커가면서 배뭉침이 더 많이 지속되었다. 배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면서 어느덧 육안으로도 배가 내려감이 보였다. 배가 내려가면서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빈번해져 갔다. 골반도 조금씩 벌어지는지 앉아있는 동안 뼈 소리도 자주 나고, 의자에 1시간쯤 앉아있다 일어나면 엉덩이가 너무 아파왔고, 발도 자주 저려왔다. 손목과 발목에도 점점 변화가 왔다. 발목을 부어만 갔고 손목은 어느 순간부터 시큰거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손가락 마디가 저려온다.
15평 남짓한 조그마한 우리의 보금자리도 하나씩 바뀌어갔다. 나와 신랑의 집에서 우리의 아가와 함께 할 집으로 변해갔다. 그 변화는 침실부터 시작됐다. 둘만의 공간이었던 침실은 아가 침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가구의 배치가 바뀌었고, 아가의 침대 위로 앙증맞은 곰돌이 수유등이 설치되었다. 침실 한편에 우리의 밤의 일부를 책임지던 우리의 책장은 아가 옷과 아가의 장난감이 들어있는 서랍장으로 바뀌었다. 신혼 초에 밖을 바라보면서 술 한 잔 할 수 있도록 놓여있던 테이블은 태어날 아가의 놀 공간을 위해 작은방으로 옮겨졌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휴식하던 작은 소파는 매트를 깔기 위해 버리기로 했다.
신랑은 아가를 위해 집안의 구조가 바뀌고, 나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주니어를 맞을 생각에 설레었다. 동시에 자신이 아빠가 된다는 것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예전부터 아들을 데리고 축구장에 오던 친구들이 부러웠던지, 아들과 유니폼을 맞춰서 축구장에 가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주 전, 즉 37주부터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제부터는 언제 나오든 정상분만이니, 혹시 이슬이 보인다던지, 양수가 터진다던지, 태동이 없다던지 하면 꼭 병원에 오라고 하셨다. 그 이후 우리는 더 열심히 아가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진통이 처음 겪게 될 나는 지난 2주간 열심히 출산 후기를 읽었고, 많이 물어봤다. 주변 지인들은 양수가 터지거나, 진통을 하면 모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직접 경험하면 알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인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가가 혹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닌지 팬티를 항상 보게 되었다. 매일 아가가 좁은 뱃속에서 잘 놀고 있는지, 태동을 지켜봤다.
신랑도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개인 물건으로 가득했던 뒷좌석을 정리하고 아가의 카시트를 설치했다. 진통이 시작되면 아내를 뒷좌석에 앉혀야 된다는 글을 보고 뒷좌석에 나를 위한 쿠션이 놓았다.
한 2주간 나와 신랑은 출산이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아가가 모습을 드러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잠을 설쳤다. 이제 39주가 되면서, 정말 1주만 남았다. 남은 1주일은 뱃속의 태동을 느끼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나와 신랑 그리고 뱃속의 아가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솔직히 첫 출산이라 무서우면서 두렵지만, 새로운 세상에 나오기 위해 보이지는 않지만 나보다 더 엄청나게 뱃속에서 노력하고 있는 아가를 위해 편안한 마음으로 아가의 신호를 기다려야겠다. 그리고 매일 신랑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