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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시영 Mar 16. 2023

나는 꽃 선물 해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좋아하는 친구를 떠올리며 꽃을 가득 산 날

꽃에 취햔 거인



최근에 백수가 되어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 구하기.

세상에 한 달에 200-300 이상 벌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었구나,

새삼 놀라워하며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던 한 주를 보냈다.


오늘의 면접은 오전 9시.

낮부터 하루를 시작하던 나에겐 굉장히 이른 시간이었다.

모든 직장인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겨우 눈을 뜨고 지옥철로 향했다.

내 간절한 마음을 눈빛으로 전달한 면접을 겨우 끝내고 나니 11시가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날이 좋아 모처럼 날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면접본 곳은 명동 근처였다.

아, 근처에 남대문이 있지 않았었나?

그럼 오랜만에 꽃시장에 들러야겠다!

며칠 전, 생일이었던 친구에게 꽃다발을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돼서 못했던 기억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 친구가 유칼립투스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얘기도 최근에 들어버렸다.


회현역 5번 출구를 기웃거리다 길을 헤매고, 여러 사장님께 3번을 물어본 후 찾은 남대문 꽃시장.

입구에서부터 황홀한 향기가 났다. 찌릿짜릿!

어떤 종류의 꽃이 있는지, 저 꽃은 어떤 향이 나는지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마침내 유칼립투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거침없이 유칼립투스 한 다발을 고른 후,

나머지는 작업하는 친구의 그림과 어울리는 느낌으로 한 다발씩 골랐다.

가격도 너무 착해서 나도 모르게 사장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나왔다.


꽃다발을 신문지에 돌돌 싼 후,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

품에 가득 안고 꽃 향기에 취해 계속 킁킁거렸다.

작업실로 돌아와 끝을 다듬고, 자르고, 비닐로 감싸 꽃다발을 완성했다.

손바닥에 유칼립투스의 잔향이 가득 남아있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킁킁, 노트북을 하다가 킁킁.

아직 친구한테 전달해주지도 않았는데, 이 행복감이 꽤 오래갈 것만 같았다.


나는 꽃 선물 해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물론 받는 사람이 꽃을 좋아해야 하는 거지만.

최근에는 현실에 찌들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는지 잊어왔던 것 같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꽃시장을 좋아한다. 꽃 선물해 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꽃 향기에 취해 킁킁거렸다. 킁킁
꽃 이름을 적어주신 사장님.

+유칼립투스 말고 다른 두 종류의 꽃이름이 들어도 들어도 어려웠다. 바보같이 세 번째 여쭤보려는 순간, 사장님이 이렇게 영수증에 적어주셨다. 감사합니다 사증님... ...







*그림에 적은 글은 즉흥적으로 적었기에, 브런치에 다시 정리해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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