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3 - Bless

Part 1 - 침묵의 무게

by The being

Part 1 - 침묵의 무게


폭우가 그치지 않았다.


스타디움의 벽은 무너져 내렸고, 피와 흙, 검은 연기와 빗물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자비의 마지막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텅 빈 허공만이 남았다.


그 빛이 열어놓은 퇴로 덕분에 일행은 살아남았지만, 그들의 가슴속은 텅 빈 구멍처럼 허전했다.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있던 선희가 가이드를 꼭 움켜쥔 채 입술을 떨었다.


선희: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빗방울에 씻겨 금세 사라질 듯 약했다.

그러나 그 약한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모두의 귀에 똑똑히 울려 퍼졌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빗물만 땅을 때리며 무거운 침묵을 메웠다.

노블은 젖은 종이를 부서져라 움켜쥐며 속삭였다.


노블: “내 글귀는… 단 한 줄도 그를 지켜내지 못했어. 내가 더 강했다면… 자비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그의 손끝은 떨렸고, 종이 위의 잉크는 비에 번져 흘러내렸다.


먹물이 흘러내리는 그 모습은 마치 그의 죄책감이 눈앞에서 흘러넘치는 듯 보였다.


논알콜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논알콜: “…우린 살아남았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하지. 자비 형, 진짜 히어로였잖아. 난 아직 아무것도 못 했는데.”


웃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쓸쓸했고,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팠다.


그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눈물이 비와 섞여 어디까지가 눈물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콩은 손에 쥐고 있던 도구를 놓쳐 땅에 떨어뜨렸다.

콩: “내 마술은… 아무것도 제어하지 못했어. 오히려 방해만 됐지. 그 혼란 속에서… 나는 쓸모없는 존재였어. 그런데 그는… 끝까지 우리를…”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젖은 도구가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메아리쳤다.


프린터는 젖은 손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그렸다. 그러나 비는 그것마저 씻어내렸다.

프린터: “내 창조물은 눈앞에서 부서지기만 했어. 나는 세상을 새롭게 그릴 수 있다고 믿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못 했네. 자비는 모든 걸 내던졌는데…”


그는 허공만 움켜쥐고 있었다.

빗줄기 속에서 그 손짓은 허무하게 흩어졌다.


모두 고개를 숙였다.


살아있다는 안도는 잠깐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비의 빈자리는 더 깊숙이 파고들었고,

감동은 곧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변했다.


누구도 그 희생을 가볍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침묵과 떨리는 숨결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도시 다른 한쪽, 좁은 골목.

비틀거리던 감염자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곁을 지나던 시민의 팔을 낚아챘다.


“으악! 놔! 제발—!”


비명이 빗속에 튀었지만, 감염자의 손아귀는 쇠사슬처럼 단단했다.

검은 눈동자가 흔들리며 상대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리고 낮게, 끊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염자: “…보라… 보라…”


피해자는 눈을 감으려 했지만, 감염자의 손가락이 눈꺼풀을 억지로 벌렸다.


짧은 순간의 시선 교차.

피해자의 목덜미에 잿빛 반점이 번지고, 검은 혈관이 얼굴로 퍼졌다.

비명은 끊겼고, 곧 눈동자가 칠흑처럼 변해버렸다.

새로운 감염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에서도 같은 웅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새 감염자: “…보라… 보라…”


주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그러나 또 다른 감염자들이 나타나 그들의 고개를 붙잡아 억지로 눈을 마주치려 했다.


비감염자들은 고개를 떨군 채 달아났지만, 몇몇은 결국 붙잡혀 끌려가며 검게 물들었다.


시장은 텅 비었고, 학교 운동장은 정적에 잠겼다.


버스터미널에서는 한 승객이 운전사의 얼굴을 붙잡아 억지로 눈을 맞추자,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차량은 멈췄고, 사람들의 비명은 빗속에서 울부짖듯 터져 나왔다.


라디오 속보가 도시에 울려 퍼졌다.


“현재 검은 눈 감염은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 중입니다. 시민 여러분은 절대 타인의 시선을 마주치지 마시고—”


잡음이 끼더니, 방송은 갑자기 끊겼다.

마지막 순간, 웅얼거림이 라디오 너머에서 들려왔다.


“…보라… 보라…”


대형 전광판에 붉은 자막이 흘러내렸다.


“전국 확산: 검은 눈 감염 주의”

네온빛은 빗물에 반사되어 흔들렸다.


그 빛은 자비가 남긴 마지막 잔향처럼,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깜박였다.


일행은 그 자리에 서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노블이 젖은 종이를 움켜쥔 채, 힘겹게 목소리를 짜냈다.


노블: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지….”


그의 목소리는 절망과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 순간, 어둠의 끝에서 누군가의 기묘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타디움 외곽의 빗속, 검은 벽 위에 서 있던 한 인물.

팔짱을 낀 채, 목을 꺾으며 경련 같은 소리를 냈다.

눈을 몇 번이나 빠르게 깜빡이고,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스트라이프였다.

그의 얼굴은 희미한 빛에 드러나, 틱장애로 인한 불규칙한 움직임이 섬뜩하게 보였다.

그는 빗속에서 일행을 내려다보며 낮게 웃었다.


스트라이프: “음…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겠지? 크크큭… 하하하.”


그의 웃음이 폭우 속에 퍼졌다.


일행의 절망 위로, 새로운 어둠이 덮쳐오고 있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