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3 - Bless

Part 6 - 나에게 음악이란...

by The being

Part 6 - 나에게 음악이란...


비는 도시의 뼈대까지 적셨다.


폐허가 된 골목마다 물웅덩이가 떨렸고, 네온사인이 끊긴 간판은 바람에 덜컹거리며 맥없는

불빛을 깜빡였다.


논알콜은 우비 하나 없이 젖은 셔츠를 부여잡고 천천히 골목을 걸었다. 손에는 긁힌 부아 디빈느가 들려 있었다. 오래전부터 함께 돌아다니던, 그의 유일한 소도구였다. 마이크 헤드의 그물망에는 녹이 슬었고, 케이블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검은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그는 마이크를 입술 가까이에 가져갔다. 그리고 숨을 들이켰다.

목젖이 내려갔다가 올라오며 한 번, 두 번. 성대는 그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휘청이는 촛불처럼 떨림만 있을 뿐, 소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번들거리는 비를 삼키듯 고개를 들었다. 빗방울이 속눈썹에 매달려 있다가 그의 볼을 타고 내려갔다.


논알콜(속으로):

“난 가수가 아니라 립싱크러였지. 사람들 앞에서… 입 모양만, 표정만.

결국, 진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웃음은 금세 구겨졌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건 빗소리와, 멀리서 끊겼다 이어지는 그 합창뿐이었다.


“보라… 보라…”


그 소리는 비에 젖은 콘크리트를 따라 미끄러져왔다. 눈을 마주쳐야 감염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규칙처럼 퍼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벽을 보고, 바닥을 보고, 하늘을 본다. 그러나 고개를 숙인다고 해도, 합창은 틈을 파고들었다. 귓속을 긁는 듯한 파장. 심장 박동에 맞춰 자라나는 어둠.


논알콜은 본능적으로 부아 디빈느를 뒤집어 잡았다. “악기”가 아니라 “무기”처럼.

그는 문득, 어제도 그제도 아니고 훨씬 이전—세상이 무너지기 전의 어느 늦은 저녁을 떠올렸다.


습기가 스며들어 눅눅해진 연습실.


논알콜은 땀에 젖은 티셔츠를 붙잡고 의자에 주저앉아 있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도 웃지 못했다.


거울 틀 위에는 찍찍이로 붙인 작은 폴라로이드 한 장.


픽스와 자신이 장난스럽게 마이크를 빼앗고 밀어주던 사진이었다. 픽스는 항상 잔잔하게, 그러나 확신으로 웃었다.


논알콜:

“픽스, 너 없으면 무대가 너무 조용해.

네가 던지던 그 리듬, 그 호흡… 나 혼자선 못 채우겠더라.”


그때, 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공기가 바뀌었다.

자비가 연습실 안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어느 결을 따라 ‘스며들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했다.

그는 공중에 떠, 조용히 논알콜의 옆에 섰다. 눈빛은 늘 그렇듯 부드러웠다.


자비(나즈막이):

“논알콜, 너는 네가 비어 있다고 생각하나 봐.

하지만 빈 건 무대를 채우기 위한 자리이기도 해.”


논알콜은 고개를 숙였다. 말 대신, 폴라로이드 사진만 만지작거렸다.

자비는 잠시 사진을 바라보다,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비:

“언젠가… 너의 영혼의 울림을 세상이 알아줄 때가 올 거야.


그리고 그 울림은… 픽스에게도 닿을 거야.”

그 말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논알콜의 가슴 어딘가에 촘촘히 새겨져,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문장으로 남았다.

그날 이후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사진 속 픽스를 오래 바라보았다.


기억이 흩어지자, 다시 빗소리와 어둠이 돌아왔다.

논알콜의 발끝에서 물웅덩이가 원을 그리며 퍼졌다.

어딘가에서 금속이 끊어지는 소리, 그리고 발소리.


합창이 더 가까워졌다.


“보라… 보라…”


골목 입구에서 감염자들이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검게 잠긴 동공들이 비를 먹고 번들거렸다.

그들은 고개를 일정한 리듬으로 끄덕이며, 마치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큐를 기다리는 합창단 같았다.


논알콜은 벽을 등졌다.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댔다.

숨을 모아, 목을 열어, 소리를 높여—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숨은 있었으나 소리가 없었다.

세계는 그의 입에서, 목에서, 차갑게 미끄러졌다.


감염자들이 다가왔다. 팔을 뻗었다.

거칠고 습한 손들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턱을 들어 올렸다.

눈을 맞추라. 보라. 보라.


그들 입술에서 떨어지는 파장들이 빗방울과 섞여, 뼈를 두드렸다.

논알콜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폴라로이드의 구석에 앉아 기타를 퉁기던 픽스의 옆모습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자비의 문장—‘영혼의 울림’—이 바로 귓속에서 울리는 듯 선명해졌다.


논알콜(속으로):

“목소리를 잃었다고… 음악까지 잃은 건 아니었지.

내 심장의 고동, 발끝의 박자, 폐에서 오르내리는 바람—

이 모두가… 노래였어.”


그의 오른손이, 마치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듯 부아 디빈느를 꽉 쥐었다.

왼손은 공중을 쓸었다.

리듬이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가슴 깊숙이 내려가 있던 숨을 크게 끌어올렸다.

숨을 내쉴 때, 그의 몸통 전체가 공명통이 되었다.

갈비뼈 사이사이를 통과한 바람이 비강과 입천장을 훑고, 성대를 거치지 못한 소리를—아니, 울림을—만들어냈다.


부아 디빈느는 그 울림을 잡았다. 케이블이 끊겼는데도, 그 울림은 마이크 헤드를 통해 공간으로 번졌다.

마치 전선이 아닌, 세계의 ‘결’을 타고 흐르는 듯.

처음에는 낮고 거친 드론처럼,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리였다.


곧 그것은 두 개, 세 개의 파형으로 갈라져 층층이 얹혔다.

베이스가 되어 도시의 바닥을 흔들고, 미드가 되어 벽과 창틀을 공명시키고, 하이가 되어 비 위에서 반짝거렸다.


감염자들의 합창이 한순간 흔들렸다.

검은 동공들이 조그맣게 떨렸다.

그들의 목에서 “보라…”가 나오려다, “보…”만 길게 늘어졌다.


논알콜의 울림이 그들의 리듬을 꺾어버린 것이다.


그는 발뒤꿈치를 두 번 비틀었다.

그 동작이 마치 드럼의 킥과 스네어가 되어, 골목을 타격했다.

오른손을 크게 휘두르자, 공기 속의 울림들이 아치처럼 휘어 골목 입구를 막았다.


비의 패턴이 바뀌었다. 낙하하던 빗방울들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의 박자에 맞춰 떨어지기 시작했다.

논알콜은 목을 열지 않았다. 성대는 여전히 쉴 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의 몸 전체가 악기가 되어 있었다.


흉곽, 장골, 손가락 마디, 발목의 관절.

모든 곳에서 다른 톤과 다른 떨림이 피어났다.


그의 음악이 골목을 넘어 도로로, 도로를 넘어 광장으로, 광장을 넘어 건너편의 허물어진 스타디움 자락까지 흘렀다.


부서진 광고탑이 고음을 따라 떨렸고, 끊어진 다리 난간이 베이스에 맞춰 진동했다.

잠겨 있던 창문 너머에서 겁먹은 사람들의 심장이 박동을 바꿨다. 그 박동은 논알콜의 리듬과 서서히 맞물렸다.


도시는, 잠깐이나마, 하나의 거대한 악기가 되었다.

감염자들은 주춤했다.


어떤 이들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어떤 이들은 귀를 막으려 했지만, 그 울림은 귀가 아닌 몸으로 들리기에 막을 수 없었다.

검은 동공들이 미세하게 수축하고, 잿빛 혈관들 위로 물결 같은 흔들림이 번졌다.


그들 입에서 나오는 “보라…”는 이제 불협이 되어 스스로를 물어뜯었다.

논알콜은 마이크를 들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붙였다.

목소리를 만들려는 의지가 아니라, 울림을 더 깊게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한 음의 중심을 잡았다.


그 중심은 낮고 따뜻했다. 밑에서부터 세계를 떠받치는 기둥 같은 음.


논알콜(속으로, 픽스를 향해):

“듣고 있지? 네가 말했잖아.

내가 무대에 서면 사람들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건 무대가 아니어도 돼. 도시가 무대면… 나는 더 크게 노래할 수 있어.”


그 음은 골목을 통과해, 전신주와 케이블과 고가도로의 철골을 따라 멀리 퍼졌다.

멀리, 아주 멀리—


비에 갇혀 있던 옥상과, 굳게 닫힌 지하의 문틈과, 숨어 있던 아이의 담요 속으로—

그 울림이 스며들었다.


감염자 무리의 한 가운데, 누군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검은 색이 잠깐 빠져나가는 듯 보였다.


합창은 그만했다. 대신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사람들의 억눌린 숨소리가 도시 위로 떠올랐다.


논알콜은 리듬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왼손으로 부아 디빈느 헤드를 천천히 쓸었다.

그 작고 느린 동작 하나가, 수백 미터를 건너 건물 벽면을 타고 흘렀다.

그의 울림은 “공격”이 아니라 “정렬”이었다.

엉켜 있던 파형들을 풀어내고, 제각각 흔들리던 물체들을 같은 박자에 맞춰 주었다.

사냥의 리듬이 아니라, 호흡의 리듬.

그때, 논알콜의 머릿속에서 자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맑게 올라왔다.


자비(기억 속, 나즈막이):

“논알콜, 언젠가 너의 영혼의 울림을 세상이 알아줄 때가 올 거야.

그리고 그 울림은… 픽스에게도 닿을 거야.”


그 문장을 붙잡자, 논알콜의 음악은 한 단계 더 깊어졌다.

소리는 더 커지지 않았지만, 멀리 갔다.

더 요란해지지 않았지만, 더 많은 것을 흔들었다.


마치 내리막길을 타고 스며드는 물처럼, 도시의 낮은 곳—두려움과 죄책감이 고여 있던 웅덩이—로 흘러들었다.


감염자들 중 일부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그들의 합창은 사라졌고, 대신 공허한 숨이 나왔다.

눈은 여전히 검었지만, 그 검은빛은 표면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논알콜은 그 흔들림을 보며, 소리의 결을 더 부드럽게 바꾸었다.


그는 부아 디빈느를 하늘 방향으로 들어 올렸다.

비가 마이크 그물망에 부딪혀 작은 톡톡 소리를 냈다.

그마저 박자가 되었다.


비도 연주에 참여했다.

논알콜은 그제야, 아주 조금 목을 열었다.

소리가 아니라 숨이었다.


그러나 그 숨이, 울림의 결을 바꾸었다.

하나의 음 위로 얇은 선율이 걸렸다.

가사를 만들지 않았다. 말의 형태를 빌리지 않았다.


대신, 픽스와 함께했던 리프의 윤곽을, 변형된 형태로, 더 천천히—마치 먼 곳으로 보내는 신호처럼—흐릿하게 그렸다.


“보라…”를 외치던 입술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잃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듯 확인하다가, 다시 빗속을 응시했다.

누군가는 바닥의 웅덩이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자기 얼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원을, 멍하니.

논알콜은 마지막으로 심장의 박동을 한 번 크게 울렸다.

그 박동은 도시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천천히 올라왔다.


그가 부아 디빈느를 내릴 때, 울림은 스스로 마무리를 지었다.


비가, 바람이, 멀리서 닫히는 철문이 엔딩을 찍었다.

골목엔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감염자들은 쓰러진 자세로 멈춰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앉은 채로 하늘을 봤고, 어떤 이들은 두 손으로 귀가 아닌 가슴을 막았다.

논알콜은 서서히 숨을 고르며, 부아 디빈느를 품에 안았다.

손은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고개를 들어 어둠 속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닿았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논알콜:

“노래는 목이 아니라… 나 자체야.

픽스, 들었지?


자비—네 말, 오늘 내가 증명했어.”

그는 고갯짓으로 박자를 하나 더 찍고, 발끝으로 마지막 리듬을 남겼다.

비가 그 리듬을 받아 적었다.


도시 어딘가에서,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작은 희망이 함께 박자를 탔다.

멀지 않은 곳, 높은 어둠의 가장자리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 울림을 듣고 있을지도 몰랐다.

논알콜은 마이크를 다시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합창 대신, 자신이 만든 새로운 호흡을 따라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의 뒤로, 비와 콘크리트와 금속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떨림은 공포가 아니라 생존의 박자였다.


논알콜(큰 목소리로):

“그래. 이제 세상을 러브 앤 피스로 만들어보자!!”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