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본질의 포지션은 왜 지켜지는 것인가?

챕터7

by The being

우리는 특정본질이 적당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적당한 포지션을 유지하는 본질은 그 본질의 가치를 유지하고 발전 시켜 나갈 수 있게 된다.

자동차는 이동수단이다. 자동차의 등장은 이동수단의 새로운 본질을 형성하였다. 기존의 이동수단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럼으로 인하여 자체적으로 본질을 형성하게 된다. 그렇다고 기존의 이동수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존의 이동수단들도 각각의 본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자동차 이전의 이동 수단이 적당한 포지션을 지켰기에 가능한 일이다. 새로 등장한 자동차는 새로운 본질을 제시하였지만 아무나 이용할 수 없는 범위가 존재 하였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자동차는 그러한 범위를 줄여나갔다. 그 와 동시에 자동차만의 본질의 포지션을 정착시켜 나간 것이다. 그 결과 자동차의 시뮬라크르는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실세계에서 자동차라는 본질을 점차적으로 정형화 시켜나가게 된다. 단지 편의사항이나 대체연료등의 개발이 이루어 질뿐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자동차의 원형본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편의사항이나 대체연료는 어디까지나 자동차의 원형본질의 시뮬라시옹으로 이루어진 시뮬라크르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비행기에 등장은 어떠한 변화를 가져 온 것일까? 자동차와 비행기는 이동수단이라는 본질안에서 형성된 시뮬라크르이다. 분명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더욱 빨리 우리를 이동시켜준다. 하지만 사용도를 따지면 자동차가 더욱 높다는 것을 알 수있다. 비행기가 이동수단이라는 본질에 더욱 가까울 수도 있지만 자동차가 이동수단에서 더욱 많이 사용되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각각의 포지션이 생긴 것이다. 그 포지션이 각각의 본질의 존재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다. 비행기보다 자동차가 많이 사용되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돈이라는 경제 개념이 개입될 것이다. 만약 이 부분을 비행기가 발전시킨다면 자동차의 본질의 가치는 점차적으로 작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동차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 입장에서는 자동차와 비행기로 나누어 져있던 본질의 통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자동차와 비행기라는 본질 너머에 이동수단이라는 본질에 다가갔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나누어 졌던 특정본질의 시뮬라크르들은 각각이 갖는 본질 너머에 본질로 접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동수단은 왜 필요한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 원형본질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이러한 물음은 이동수단 이전에 이동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준다. 즉 이동수단에 대한 탐구는 이동이라는 이동수단 넘어에 본질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버프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동을 하는가? 본질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인데 말이다. 우리의 이동은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본질안에서 본질너머에 원형본질에 다가가기 위하여 이동하게 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동을 하기위하여 그러니까 본질에 다가가기 위하여 인간이라는 것이라는 개념보다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본질의 포지션을 지정하였기에 이동이라는 수단으로 본질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동이라는 것도 인간이라는 본질안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우리가 형성한 본질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본질을 형성하였기에 파생된 시뮬라크르라고 볼 수 도 있겠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이라는 본질의 포지션을 현재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때에 기준이 적용되는 것 같다. 인간역시도 원형본질에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을 기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 본질의 포지션은 지금과 같이 유지 될 것이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것이고, 원형본질에 다가가는 방식이 달라 질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원형본질에 대한 탐구가 분명히 이루어져야한다. 우리앞에 놓여진 수 많은 시뮬라크르에서 사고가 멈춘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에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은 원형본질의 탐구로 인하여 행했던 시뮬라시옹이 이루어 졌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하지만 넘쳐나는 시뮬라크르의 영향으로 이루어지는 복제, 재현행위는 한계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한번의 시뮬라시옹은 원형본질에 왜곡이 분명이 일어난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왜곡의 정도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스스로 왜곡된 세상에서 살게 된다는 의미를 얘기하는 것이다. 현재에 존재하는 것들은 지금에서야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불필요한 것들도 분명 많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는 필요하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존재 할 것이다. 왜 이러한 것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인간중심에 시뮬라시옹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지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은 분명 인간만의 본질을 형성하였지만 인간 역시 원형본질의 시뮬라크르라는 것이다. 원형본질의 재해석정도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이 중심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심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을뿐이다. 이것이 반복되는 시뮬라시옹으로 인하여 생성된 시뮬라크르에 대한 영향으로 생긴 왜곡이라고 판단되어진다. 앞으로 인간의 본질에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 넘어에 본질의 탐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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