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끊임없이 시뮬라시옹을 하게 되는가?

챕터 6

by The being

우리는 왜 끊임없이 시뮬라시옹을 하게 되는가?


우리는 시뮬라시옹을 의도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바라보는 원형이 온전히 확인되지 않기에 모든 것이 시뮬라시옹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것이든 그것에 대한 본질을 생각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탐구에 결과로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특정 본질에 대한 탐구가 그 특정 본질을 제대로 꿰뚫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각자의 관점이나 시각으로 바라보며 탐구한 결과인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주관으로밖에 탐구할 수 없기에 본질을 제대로 보았다고 얘기할 수 가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의 시뮬라시옹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가 시뮬라크르라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우리가 타이어에 대한 본질을 탐구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분명 책이라던지, 정보의 형태로 주어진 것을 토대로 탐구를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누군가가 타이어에 대한 시뮬라시옹을 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시뮬라크르를 토대로 탐구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료들을 탐구하다 보니 타이어라는 본질 자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기존의 시뮬라크르를 토대로 발전시키는 형태가 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타이어라는 기본 본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자나 후자 모두 시뮬라시옹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이어라는 본질 자체를 온전하게 디자인할 수 없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시뮬라시옹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이어라는 틀을 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타이어 전문가가 양산되는 것이다. 각자의 시뮬라시옹을 현실에 더욱 적합하게 대입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전부라고 불 수 있겠다.


즉 우리가 끊임없이 시뮬라시옹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행위인 것이고, 시뮬라크르의 생산은 피할 수 없는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본질을 탐구하고 추구해야지만 우리는 시뮬라시옹이 이루어짐을 생각할 수 있다. 더 좋은 타이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타이어의 본질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에 타이어의 시뮬라크르의 탐구 역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분명 시뮬라크르는 본질의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는 원형 본질이 갖는 가치와 시뮬라크르의 가치를 비교하기가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뮬라크르가 분명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족감은 특정 본질의 고착을 가져오는 것이고 끊임없이 발전된 형태의 시뮬라크르의 양산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현시대에서 시뮬라시옹은 피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특정 본질이 형성되고 그러한 본질이 형성되었기에 시뮬라시옹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본질의 디자인의 가치는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본질 형성이 끊임없는 시뮬라시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뮬라시옹은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시뮬라르크의 발전은 본질에 접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시뮬라크르의 발전이 본질의 발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오류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보이는 시뮬라크르가 현실적이기에 그러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지만, 시뮬라크르는 어디까지나 본질의 탐구에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면 타이어라는 본질 너머에 본질을 생각해 보면 타이어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특정한 본질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타이어에 시뮬라크르가 생상 되는 것은 아직 타이어에 본질 너머에 본질을 생각한 이가 그러한 탐구결과를 현실에 대입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미 탐구 분야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타이어는 현재 분명한 본질을 형성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말은 타이어만의 본질의 포지션이 지켜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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