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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진 Jul 19. 2024

풋사과 한입 베어 문 적 있었나

Youth, Ando Tadao, 2023

어쩌면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단어일 지도 모르겠어. 청춘, 아니, 심지어는 혐오 따위까지 할 만큼의 진절머리가 낫는지도 모르겠다. 늘 나를 애처로이 위로하던 것. 더군다나 연민의 여러 획(劃)으로 나를 감싸기까지 했던 것. 어떤 절박의 순간들에서 내 명(命)과 명(名)을 건져 올렸던 것. 이토록 온갖 추상적인 문장들로만 완전하게 형용할 수 있는 단어를 나는 참 사랑했구나.


십 년과 십 년이 맞물려 그제야 처음 감히 입에 올려봤다. 청춘, 그래, 나도 괜스레 그것에 종속된 어떤 단원처럼 똑같은 구호만 역겹게 외쳐댔다. 청춘이니까! 청춘이잖냐! 모두와 똑같은 팔 한 짝을 빔이라도 쏘는 로봇팔로 둔갑시키듯, 내 그것도, 그러니까 내 청춘도 하나 영세(永世)한 것으로 둔갑시켰다. 한낱 동정 냄새나는 풋사과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그래서 내 청춘은 정말로 고귀했을까. 누구와도 똑같이 한심스럽기만 했던 것 같은데. 푸르르지 못한 봄날의 연속이었다. 아팠지만, 아프니까 어쨌다고 다음 구절을 읊어대기에도 나약했다 나는. 비가 와도 무얼 하나, 주둥이 벌리는 꽃봉오리 한 개 없는데. 이렇게 고독할 수가 없었다. 내 청춘은 고독한 것이었다. 외로우면서 고고한 척이나 해대는, 고독이 곧 내게는 청춘이었다.


인제와 청춘을 그리워해 봤자, 청춘은 그곳에 없다. 이럴 때는 그곳에 있기는 했었는가 먼저 확인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존재는 했던가, 청춘이란 것?


청춘을 또 그리워한다.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그러나 갑자기 증발이라도 해버린 것 같은, 정말 사랑했던, 아마도 잠시 흔적은 남기고 갔을지도 모르는, 내 청춘을. 죽고 싶을 만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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