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상| 지갑을 분실했다

재발급과 재등록의 늪

by tlsgud

요 근래에 있었던 일을 그저 일단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푸념 섞인 글을 써본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오래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 편도 아니고 자잘자잘한 일상의 소동들은 오히려 일부러라도 빨리 잊으려 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가, 종종 내가 점심을 뭘 먹었지? 열쇠를, 지갑을 어디 뒀더라? 내가 아침에 해야 할 일이 뭐였지? 어제 퇴근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이 뭐였지? 등, 종종 루틴화 되어있는 일도 가끔 잊어버리는데, 아뿔싸! 항상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두던 카드지갑이 없어진 사건이 얼마 전에 발생했다.

분명, 가족 모두가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카드키로 문을 잠갔고, 카트키는 고스란히 카드지갑에 삽입 후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카트를 쓸 일도 볼 일도 없었기에 카드지갑은 당연히 꺼내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 앞에 섰는데 어라? 카드 지갑이 없었다.

깨달은 순간부터 초조하고 땀이 흐른다.. 떨리는 손으로 평소와는 달리 초인종을 눌렀다.

아내와 아들은 왜 늘상 직접 열고 들어오던 사람이 무슨 일로 초인종이냐며 의아해했고 난 전혀 하나도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글쎄, 지갑이 읎네.. 회사에 두고 왔나?”라며 태연한 척해봤지만.. 정말 걱정이 되어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정말로 흘렸다면 사무실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절대 길이나 오가는 전철이나 길에 흘렸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없어진 것을 깨닫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카드지갑은 감감무소식이다.

사실 무엇보다도 귀찮은 것은 경찰서와 이용하는 지하철노선의 가구역마다 직접 전화로 습득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도쿄를 오가는 다양한 노선의 각 역마다 전화를 참 열심히도 했다

카드지갑엔 항상 세 장의 카드가 들어있었다. 집 카드키,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신용카드야 이용을 정지시키면 걱정은 없다. 누가 쓸 수도 없을 테고 혹 부정사용이 확인된다면 보상받을 길은 많기 때문에.

운전면허증도 역시 경찰서에 신고 후 번거롭지만 재발급을 받으면 될 문제다.

그런데, 운전면허증에 주소가 찍혀있고, 카드키를 습득했다면 평화로운 우리 집으로의 침략도 가능해진다는 생각에 며칠을 걱정 속에 보냈다.

지갑이 없음을 깨닫고 일주일 동안 운전면허증 재발급과 신용카드 재발급을 신청했다..

위에서 기술했듯, 재발급받으면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일본의 일처리..속도…

대학시절 처음 운전면허증을 분실했을 때, 재발급하는데 일곱 시간 정도가 걸렸었다.

(그 당시엔 규슈 오이타현의 어느 면허시험장에서 재발급을 진행했다. 망할 일본의 행정)

그런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면허증은 그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약 두 시간 만에 재발급을 받을 수 있었다.

엄청난 발전이다. 재발급을 담당하는 경찰은 나에게 면허증을 벌써 두 차례나 분실했으니 주의하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일본의 면허증은 면허번호 가장 끝자리에 분실횟수를 표시한다

다음은 신용카드. 내가 사용 중인 카드는 통장의 캐시카드와 신용카드, 체크카드가 통합된 카드로 일단 은행에 전화해 캐시카드와 체크카드의 기능을 정지시켜 불법적인 남용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난항이 시작되었다.

일본 어떤 기업의 고객센터이든 상담원 연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걸려도 너무 걸린다.

카드를 분실했다는 신고를 하기 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무려 40분 이상을 기다렸고, 상담원 연결이 된 후에도 본인확인 및 계좌확인 등등 확인절차를 위해 똑같은 이야기를 세명의 담당자에게 앵무새같이 반복하며 장장 80분 만에 카드의 분실신고 및 이용정지를 완료했다.

그 후 은행 담당자는, 신용카드의 기능은 또 카드회사에 신고할 필요가 있음으로 별도의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카드는 통합하면서 고객센터 및 행정적인 운영은 대체 왜 통합을 하지 않는지 짱구를 아무리 굴려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분실한 나의 잘못이 제일 크다. 나 스스로 야기한 일이지만, 일본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은 일본에 20년을 살아도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신용카드 정지를 위해 또 약 60분의 시간을 전화와 씨름했다. 물론 똑같이 개인정보 및 계좌확인 등등 확인을 위해 또 앵무새가 되었다. 아무튼 정지도 완료했고 이제 재발급 신청이 남았는데, 어렵게 연결된 상담원은 “정지는 완료했으니 재발급은 소지하고 계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신청해 주세요”라고 한다.

와… 정말 미칠 노릇이네.

왜? 아니 왜? 대체 왜? 고객센터는 그럼 뭐를.. 해?

(내 탓이다.. 나의 탓이다…)

아무튼 또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재발급 신청을 했으나 새로운 카드가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2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내 한 번의 실수가 이렇게 내 삶을 불편하게 한다.(정말 어디 갔을까 카드지갑..)

은행과 카드사의 깝깝한 행정적 절차를 어찌저찌 잘 돌파해 낸 후, 또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

카드가 새로 발급되면 카드번호가 바뀔 텐데, 각종 보험 및 매달 카드에 연계되어 지불되고 있는 여러 가지 비용의 지불항목들의 카드정보를 갱신해야만 한다.

앞이 깜깜했다. 보험사에 전화를 해 또 위와 같은 절차를 몇 시간이고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불만 섞인 한숨을 내쉬는 나에게 아내는 내일모레 마흔인 사람이 지갑을 잃어버린 게 잘못이라며 정신을 똑바로 차릴 것을 당부한다. 아내는 정말 똑부러지는 여자다. 매사에 꼼꼼하고 계획적이며 뭘 잊거나 깜빡하는 일이 없다. 그런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게 쳐다보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그날부터 나는 어린아이처럼 지퍼 달린 지갑에 꼭 필요한 것만 수납하여 목에 걸고 다니고 있다.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지하철 유리창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참…

자, 어쨌든 이제 남은 것은 집 카드키다.

우리 집 현관은 몇 년 전 아들 녀석의 실수로 인해 모두가 키를 들고 있지 않은 채로 밖에서 문이 잠겨 한 번 열쇠회사를 불러 문을 뜯은 적이 있었고, 그 당시 비용은 약 15만 엔이 들었다.

과거의 사례를 끄집어내어 보면 이번에 카드키를 새로 맞추는 것도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 것 같아 차마 아내에게 먼저 이야기 꺼내기가 너무 두려웠다. (그만 혼나고 싶었다… 배짱도 좋지…)

그렇게 나의 두려운 침묵을 이어가던 어느 날 저녁, 아내는 남은 카드키 두 장과 현관문 이용 설명서를 들고 나에게 카드를 재등록할 것을 이야기했는데, 이야호! 비용을 들이지 않고 카드등록 정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아내는 이미 진작에 제조회사에 문의해 알아봐 두었던 것이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야.

아무튼 그렇게 현관의 재등록도 마쳤고 일단 요 근래의 카드지갑 분실에 의한 일련의 상황들이 일단락되었다. 70일 같은 7일이었다.

오늘 출근길 친한 형님과 메시지로 지갑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이 형님께서 “이제 정말 어이없는 곳에서 지갑 발견 ㅋㅋㅋ” 이라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형님 말씀대로 된다면 진짜 너무 열이 받을 것 같다. 더 이상 찾지 않는 게 답일까…?

아무튼 근래에 있었던 일련의 과정을 곱씹자니, 가까운 미래에 어서 지갑 따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면 너무나 좋겠다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이미, 한국의 경우 도어록이 보편화되어 집 열쇠를 들고 다니는 것이 너무 옛날의 일이 되었지만 아직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일본에선 너무나 먼 이야기이기에 가까운 그런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우리 집 키가 카드키인 것도 엄청난 발전이고, 실제 우리 집 주변의 대부분의 가정들은 열쇠를 꽂아 돌린다)

집 열쇠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기타 카드 및 신분등 등을 그냥 칩으로 몸에 심고 싶다!

잃어버릴 일이 없도록!

결국은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니, 푸념은 여기까지 만이다.

앞으로는 절대로 네버,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을 테다.

(물건을 잃어버려 마음이 안 좋다거나 다른 손해를 볼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 다시 재발급과 재등록의 귀찮은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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