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달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평소 쓸 때 느꼈던 크기보다 사진 속 식탁이 매우 널따랗다.
그래서 내 상차림이 마치 만주 벌판 한가운데 놓은 조촐한 식사 같아서 기분도 같이 쪼그라들었다.
보기에 초라한 이 상차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1국, 1첩 구성에도 성식 씨가 꽤 만족한 저녁상이었다는 것을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그래야 쪼그라든 기분이 조금이라도 펴질 것 같아서.
저 허여 멀 건한 도가니탕은 made by me가 아닌, 무려 대기업에서 만든 탕이다.
성식 씨는 대기업 표 도가니탕을 국물 한 방울 남긴 적이 없다. 대기업 맛을 좋아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사실 그는 허연 (하얀은 약하다. 허연이 맞다.) 국물 마니아로, 색이 허옇다면 3일 연속 같은 상차림도 마다하지 않는다.
카레가 삼일째였던 날, 나 몰래 라면을 끓이던 그를 발견했던 것이 아직 생각난다. 하하..,
당신과 나의 여섯 번째 이별 식탁
아빠와 달리 나는 도가니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도가니탕을 목표로 식당을 찾은 적도 없을뿐더러 도가니탕 메뉴는 늘 설렁탕 집에서나 봤기에, 설렁탕 대신 선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같은 판에 놓고 찍은 듯 닮은 아빠와 나지만, 살아온 시대가 다른 만큼 입맛이 갈릴 때가 많다.
도가니탕이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곱창이나 치킨도 그렇다. 아빠는 곱창에서 순대만 골라 먹고, 치킨은 후라이드 하나만 패는 후라이드 외길 인생이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 곱창이라면 돼지곱창, 소곱창, 알곱창, 야채곱창, 순대곱창, 대창, 막창, 양곱창 어느 하나 가리질 않고 모두 품는 곱창 계의 마더 테레사가 나다.
치킨? 말할 것도 없다. 선호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치킨집에서 파는 사이드 메뉴까지 좋아하는데, 치킨집 사장님들에게 환상의 짝꿍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친구의 스위트홈, 행복마을에서 성인 돼지 파티가 열렸다. 멤버 미미, 트리, 광례의 앞글자를 딴 미트광, 일명 고기에 미친 자들은 이름에 걸맞게 메뉴를 선정했다. 막창 곱창 세트, 뿌링클과 치즈볼.
지하까지 뚫고 내려간 기분이 하늘까지 치솟을 메뉴로소이다.
여담을 보태자면, 사진이 흐린 것은 뜨거운 김을 맞으면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 어서 찍고 먹어야 했기에.
아빠는 이 메뉴를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자극적인 맛에 혀가 절어질 것이라며 비난할 수도 있겠다.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있다면 그것은 맵.단.짠으로 무장한 음식이 아닐까요. 나는야, 죽어있는 영혼을
자극적인 음식으로 깨우는 90년대 생이다.
유난히 태풍이 많은 올해 여름. 일요일 오후에 태풍이 올라오는 속보를 보며 기도했다. 부디 내일 인명피해는 없되, 거센 강풍과 억수 같은 비로 사람이 돌아다닐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여 주소서.
나의 철없고 깜찍한 기도는 하나님께 가볍게 무시됐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인터넷에 ‘이쯤 되면 꼰대인 것 인정해줘야 할 것 같은 80년대 태풍 당시 출근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봤다. 눈을 의심했다. 홍수로 가슴까지 잠긴 도로,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떠내려 온 가구를 타고, 혹은 물길을 가르며 출근하고 있었다.
도대체 80년대는 어떤 시대였기에 저런 풍경이 생겨난 것일까. 심지어 사람들의 얼굴은 담담하다. 짜증도 분노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 상황을 헤쳐 나가고 있다.
정확히는 89년에 태어나 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내가 세상에 오기 10년 전 강한 자들의 출근길이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80년대, 약한 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였다.
경제와 함께 사회간접자본도 급속도로 발전한 80년대, 사람들의 시대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맞지 않아 생긴 재밌는 풍경이다. 풍경의 이름은 불균형.
고속도로 가로지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듯 어려움을 가볍게 뛰어넘기도 하고, 넘쳐난 빗물을 가르듯 고난을 감내하며 살아온 80년대, 우리 아빠의 시절.
2020년대의 우리는 고속도로나 홍수는 어쩔 수 없는 난관이라고 인정하고 포기 목록에 리스트를 올린다.
그래서 세상은 한때 우릴 삼포세대, N포 세대라고 위로도 조롱도 아닌 별명을 붙였다.
작은 것에 사치하고, 자극적인 맛에 깨어나는 기분을 느끼는 우리가 짠하기도 하면서, 연약하게 느껴진다.
80년대의 아빠와 2020년대의 나는 작은 것에서부터 불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빠의 시대는 너무나 벅찼고, 우리의 시대는 너무나 무기력하다.
벅찬 시대를 위로했던 것은 슴슴한 맛이었을 것이다. 무기력한 우리를 깨우는 것이 간간하고 달달한 맛에 있듯이.
나는 여전히 도가니탕보다는 곱창이 좋지만, 그를 위로하는 맛이 이해가 된다.
여전히 이해 안 가는 것 투성이지만. 함께 한 지 30년이 넘어서 이제 하나가 이해되기 시작했지만.
슴슴한 그를 인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