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을 앞둔 달의 아버지를 위한 1년 간의 저녁 식탁
아빠는 모르겠지만 나는 두부의 말랑한 식감을 좋아해서 부쳐 먹을 두부도 꼭 찌개용 두부로 산다.
그리고 튀김옷이나 밀가루 같은 두꺼운 옷 대신 소금 뿌린 계란 옷만 얇게 입혀 부친다.
그래야 촉촉하고 보드라운 식감 그대로를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괜히 튀김옷을 입히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두부에 튀김옷을 입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두부는 꼭 튀김옷을 입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역의 물컹한 식감 때문에 두부만큼은 차별성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닭다리살에 튀김가루를 입혀 성공한 몇 번의 경험 때문에 튀김가루를 만능 가루로 생각하게 된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나의 두부는 튀김옷을 입었고 색다른 패션은 결국 만든 이, 나 자신에게 외면받았다.
oh냉정한 패션의 세계oh oh냉정한 두부의 세계oh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고 싶다거나.
늘 먹던 소다맛 젤리가 아닌 콜라맛 젤리에 도전하고 싶은.
혹은 세수하고 양치하던 순서에서 벗어나 양치하고 세수한 후 내친김에 안 하던 각질 제거까지 하고 싶은 그런 날.
일상적인 것을 파괴해버리고 싶은 충동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좋았던 결과는 그 좋은 기분은 사라지고 새로운 루틴으로 내 일상에 녹아 사라졌을 수도 있고
나빴던 결과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으로 남아 아직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지는 걸 수도 있겠지. 이유가 어찌 됐든 새로운 것에 실패하면 과거의 나에게 오, 멍청이 그딴 도전은 그만둬 제발! 파발이라도 전하고 싶어 기분이 매우 좀스러워진다.
당신과 나의 다섯 번째 이별식탁
사실 난 식당이나 다른 가정집에서 마련한 튀김옷 입은 두부부침은 매우 잘 먹는다. 심지어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가고, 또 제일 많이 먹는 반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하는 두부부침에는 꼭 계란 옷만 입히고 싶은 고집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 두부만은 이래야 해!!!라는 괴랄한 집착. 사실 튀긴 두부도 두부조림도 심지어 찌개에 빠진 두부도 상관없이 좋아하면서.
두부만이 아니고 사람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우리 아빠만은 이래야 한다는 인에 박힌 생각을 꽤 오래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품 안에 쏙 안긴 자식.
체벌이 남아있던 학창 시절, 내가 선생님께 맞았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엄마는 그 날로 외삼촌을 대동해 학교로 찾아왔다. 자습이 끝난 시간이라 바깥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던 나,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시던 날 체벌한 선생님. 멀리 보이는 엄마와 외삼촌이 마치 신기루 같았다. 잘못 봤나 싶었지만 두 형체는 점점 가까워지고 선명해졌다. 완전한 형체의 엄마가 앞에 섰고, 말을 잃은 내게 엄마는 일부러 크게 외쳤다.
"너 오늘 맞았다며. 왜 맞았어!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맞기까지 해!"
좀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법이 없는 여자였다. 선생님은 얼마 태우지도 못한 담배를 끄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의 초라한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런 것은 예사 일도 아니었다. 남자아이와 투닥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내가 맞기라도 하면 그 아이는 사람들 앞에서 사자후를 내지르는 아빠 때문에 눈물을 쏙 빼야 했으며, 핸드폰 배터리가 부족해서 전화라도 안 되는 날에는 우리 집 대재앙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가는 길, 날 찾으러 나온 엄마, 아빠와 마주친 것만 여러 번이다.
국토대장정 캠프에 참여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정도로 구속이 있었지만, 어쨌든 부족함 없는 사랑이었다.
철이 좀.. 아니 많이 없던 나는 그 사랑이 당연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뭐든지 받아 주는 사람으로 박혀 있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그 관계도 우리 사이에 엄마가 사라지자 뒤집어지고 탈피하며 완전히 달라졌다.
아빠와 나는 더 이상 단순한 아빠와 딸이 아닌 동거인이라는 관계의 겹이 생겨났고 이전의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완전히.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내 몫이 됐다. 이 흐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빠에게 서운했다. 왜 날 더 감싸주지 않는 걸까. 옆에서 부축해주지 않는 걸까. 나는 얼마 전에 엄마를 잃었는데. 이걸 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어느 날, 아빠가 구멍 난 양말을 신으며 말했다.
"너는 아빠 양말이 다 구멍 나 있는 것도 모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전에 없이 건조하고 퉁명스러웠다. 내가 아빠 양말까지 챙겨야 하나. 무슨 애도 아니고.
이때부터 아빠한테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인데 내가 기대하는 역할을 해주지 않아서 미웠다.
당시 만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아빠를 잘 챙겨주라는 말을 했다. 그 말들이 싫었다. 그럼 나는 누가 챙겨주나요.
스물다섯. 철이 좀처럼 들지 않고 아프기만 했던 나는 자꾸만 옛날로 돌아가려 했고,
이 덜 큰 사람에게 아빠는 의지해야 했다. 옆에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어긋난 기대를 하며 서운함을 쌓아갔다. 켜켜이.
관계의 변화가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나는 한동안 꽤 아빠를 원망했다. 우리 아빠는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줘야 되는데, 누가 날 괴롭히면 당장 나서 줘야 하는데. 이래야 하는데. 저래야 하는데.
부모가 내 필요에 의한 존재가 아니라는 배움의 시작은 속상하고 따끔했다.
이래나 저래나 같은 사람인데, 나도 그들도.
변하는 것은 관계의 결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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