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집밥 냄새가 진하게 나는 밥상이 생각나는 날이다. 참치캔과 김으로 떼우는, 그런 가벼운 식사가 아닌 구수하고 무거운 냄새를 가진 그런 집밥 말이다. 그런 냄새라면, 된장밖에 없다. 그리고 이왕 된장이라면, 고깃집 된장찌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뒤져 레시피까지 찾아보고, 장을 봐왔는데 글쎄, 표고버섯을 빠뜨렸다. 지갑을 들고 두 번째 장을 보러 나갔다. 일명 두 번째 표고버섯 원정대.
오늘의 된장찌개는 원정대 정도의 정성이 들어갔다. 그래서 한 술 뜬 누구라도 맛있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당신과 나의 일곱 번째 이별 식탁
된장찌개 재료 : 멸치육수, 된장(1), 쌈장(1), 고춧가루(1/2), 감자(1), 애호박(1/3), 양파(1/2), 두부 반 모, 표고버섯(2)
된장찌개 만들기
각종 채소, 두부를 깍둑썰기 한다
멸치와 다시마 등 재료를 넣어 육수를 우려내도 되지만, 퇴근 후 지친 사람이라면 멸치육수 티백을 넣어 우려낸다.
멸치육수에 된장과 쌈장을 넣어 끓인다.
10분 정도 끓으면 썰어둔 채소와 두부를 넣고 중불에서 10분간 다시 끓인다.
오래간만에 끓인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한 입 뜨기도 전에 벌써 맛있다.
된장찌개에 온 힘을 기울일 계획이었으므로, 동그랑땡은 만두로 유명한 대기업이 만들고 내가 구웠다.
된장찌개 맛을 한 번 보자 더욱 만족스럽다. 성식 씨가 좋아하는 차돌박이라도 좀 넣었어야 했나 하는 작은 아쉬움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대기업 동그랑땡에 행여나 밀릴까 하는 괜한 자존심 때문이지 결코 맛 때문은 아니다. 찬이 조금 부족한 듯하여 감자전을 부쳤다. 이제 뒤집을 차례가 되었는데 방 문을 열고 나온 아빠가 배고프다고 재촉했다. 결국 망쳐버렸다. 찢어진 감자전, 찢어 갈겨진 내 마음. 다 아빠때문이다. 요리에 독촉은 독이다. 내 마음과 닮은, 슬픔이 담긴 감자전까지 식탁에 오르고, 아빠는 긴 기다림 끝에 수저를 들었다.
그 기다림에 비해 짧았던 식사가 끝나고 식탁 상태를 확인했다. 불안했다. 천천히 뚝배기와 반찬 그릇, 두 결승 후보를 번갈아 보자 턱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위아래 어금니를 물고, 차오르는 패배감을 삼켰다. 부스러기 하나 남지 않은 동그랑땡과 산등성이처럼 등을 보이고 누운 자작한 된장찌개 위 표고버섯들. 목구멍이 시큰해져서 설거지 통으로 그릇들을 옮기며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에이씨.
누가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땀도 가끔은 배신한다.
그럴 때마다 삶이 나를 속였다는 배신감에 휩싸이곤 하는데, 오늘은 된장찌개와 아빠에게 괜히 야속함을 느낀다. 에라이 무정한 세상. 내가 들인 정성만큼 결과가 나온다면 이 세상에 속상한 사람은 절반 이상이 줄텐데. 내 수고를 내가 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엔 난 아직 타인과 세상에 의존적이다.
인정을 간절히도 바라는 이 지독한 짝사랑은 내 안에 불안을 키우기도 한다. 그때문에 어지럽고 울렁이는 게 지겨워서, 더는 매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늘 헛헛한 결말이다. 반복되는 다짐과 불안. 내 손은 아직 그들의 옷자락 끝을 세게 쥐고 있다.
2년 전,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내게 아빠가 속상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투자도 많이 하고, 아낌없이 키웠는데 네가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왜 멋대로 내 인생을 기대했느냐는, 마음속에 가둔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도 20년이 넘는 정성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까
그런데 말이야, 내 된장찌개 정말 맛있었다.
누가 알아주기에는 늦었지만, 배신감으로 끝나기엔, 들인 정성만큼 괜찮은 아이였다.
언젠간 아빠도 같은 생각 한 번쯤은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별안간 초라하게 느껴져 설거지와 함께 그것들을 씻어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