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하게 됐을 때야 비로소 스스로 식사를 차려먹었다. 먹거리를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데 20년은 많이 느린 시간이었다. 어른은 아니고, 그저 드디어 자기 먹을 밥, 스스로 해 먹는 기능을 쓰기 시작한 존재에게 엄마는 두부 동그랑땡을 가르쳐주었다. 색깔을 낼 수 있는 파, 당근, 맛살 등을 다지고, 저민 두부에 소금과 함께 조물조물 섞은 후, 부드럽게 풀어낸 달걀 물에 담갔다가 구워내면 맛 좋은 두부 동그랑땡 완성. 손이 손이 계속 가고, 국물 없이도 밥 두 그릇을 그 자리에서 뚝딱 비워낼 수 있는 반찬 계의 외유내강이다.
해 먹을 수 있겠냐며 걱정하던 엄마는, '내가 만들었지만 참 맛이 좋았다'는 후기를 들으며 기특함과 뭉클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는 스무 살이 넘은 늙은 아기를 그때까지도 키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한 것도 맛있었지만, 두부 동그랑땡 장인인 엄마가 해주면 맛은 더 기가 막혔다. 나중에 이모가 똑같은 레 시피로 해주었을 때 같은 맛이 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엄마에겐 뭔가 비기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모의 두부 동그랑땡을 한 입 베어 먹은 내게, 이모는 재촉하듯 물었다.
"어때, 맛있지? 엄마가 한 거랑 똑같지? 솔직하게 말해 봐."
"음..., 똑같진 않은데."
이모는 이게 왜 똑같지 않냐며, 엄마보다 맛있는 재료도 더 많이 넣었다면서, 요청대로 솔직하게 말한 내게 따졌다. 이모의 두부 동그랑땡은 아무 문제없었다. 모든 게 곧이곧대로 말한 내 탓 이리라.
당근이나 맛살이 없을 때는 찬장에 숨어 있는 참치를 대신 넣어서 두부 참치 전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엄마의 두부 동그랑땡만큼은 아니었지만 자취 초보가 해 먹기에는 꽤 괜찮은 맛이었다. 편한 것이 익숙하고 좋다고, 그 뒤로 아빠를 위한 식탁에도 오리지널 두부 동그랑땡이 아닌 두부 참치 전이 올라오게 되었다.
당신과 나의 열 번째 이별 식탁
재료 : 두부 한 모, 참치 캔, 양파(1/3), 대파, 후추, 소금, 달걀 3알
두부 참치 전 만들기
양파와, 대파를 다진다.
두부를 저민다.
기름을 뺀 참치, 저민 두부, 다져진 양파와 대파를 섞는다.
소금과 후추를 친다. 소금을 소금 소금, 후추를 후추 후추
달걀 3알을 풀고, 재료와 섞인 두부를 달걀 물에 담갔다가 굽는다.
참 쉽죠잉? 칼질이 싫은 날엔 이마저도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해 먹어야 한다. 그 정도로 귀찮다는 것은 오늘 하루 내가 너무 수고했고, 지쳤다는 뜻이기에 더욱 맛있게 만들어서 나를 융숭하게 대접해줘야 한다. 힘들었지만 그렇게 먹고 나면, 대충 때웠을 때보다 기분이 한결 낫다. 뭐라도 걸리면 지구를 폭파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쁠 수도, 당장 죽어도 상관없을 만큼 무력함에 빠져 있을 수도 있는 상태에서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정성이 담긴 식탁의 힘이다.
고된 하루를 보낸 사람이 나 하나로 모자라 이제는 둘이기 때문에, 많이 만들었다. 아주 많이.
거실이 기름 냄새로 가득해질 때까지 두부 참치 전을 굽고 나자, 기름 분자 탓인지 부엌 공기마저 무겁다.
무거운 공기가 어깨 위에 앉아 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식사 준비 끝에 내 체력은 결국 다 되었고, 결국 금단현상이라도 겪는 사람처럼 손이 떨려왔다. 끊은 것이 있다면 점심 이후 '식사' 하나뿐인 것을.
하루 종일 적립된 분노로 원기옥을 만들고 있던 나는, 누구든지 잘못 건들기만 하면 이 원기옥으로 없애버릴 작정이었다. 산 위에 걸린 달만큼 커져있던 원기옥, 나의 분노 덩어리는 한 술, 두 술, 세 술, 네 술, 다섯 술에 움츠러들더니, 한 공기가 반 공기가 되자, 쥐방울만큼 작아졌다. 그렇게 원기옥은 작아져 어느새 티끌이 되어갔고, 화쟁이의 저녁은 평화롭게 저물어갔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신나는 설거지 타임을 즐기고 있을 무렵, 아빠가 퇴근했다. 그의 어깨엔 30년 넘게 쌓인 피로가 한 짐이었다. 피곤으로 눈이 푹 꺼진 아빠. 짐을 벗어던지는 목욕재계 후 식탁 앞에 앉았다. 노곤함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식탁 위로 가라앉았다. 묻는 말에도 별 말이 없는 그는 조용히, 오래도록 밥을 먹었다.
한참 뒤, 식사를 마친 아빠가 조리대에 먹은 그릇을 놓고 가는 달그락 소리에 부엌으로 나가 보니,
어느새 아빠는 그의 작은 성으로 들어가서 온라인 바둑 게임에 접속했다. 하루 중 얼마 안 되는 성식's time의 시작이다. 서 있던 자리에서 누워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만큼 회복한 것이다. 가끔, 아니 매우 자주 식사 차리기가 성가시게 느껴진다. 그러다 이따금씩, 혼자 먹는 밥상이었다면 스킵했을 식사를 챙겨 먹고, 살아야 할 의미까지 회복하게 될 때면, 아빠에게 저녁 식사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성식 씨, 당신의 식탁은 행복한가요. 저는 때때로 행복하고, 자주 성가시고, 대체로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