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식탁 차리기
양수리에 산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연핫도그를 사 먹었다. 길거리 음식보다는 한 상 차림을 좋아하는 식성 탓에 지척에 있는 연핫도그를 향한 발걸음을 미루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다. 소담스런 가게에서 사 먹은 2500원짜리 모짜렐라 연핫도그는 가격도 참 귀엽다.
핫도그가 조리되는 동안 중학생 자녀가 있다는 사장님 내외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소한 기름 냄새가 어릴 적 향수를 불러왔다. 엄마와 자주 장을 보러 가던 마트 정문 옆에 어묵,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겨울이면 그 노점상에서 엄마와 먹던 어묵이 그렇게 맛이 좋았다. 추운 손을 녹이던 어묵 국물과 하나 더 먹으라던 감동스러운 엄마의 한 마디는 내 어릴 적 겨울의 따뜻한 인상이다. 주인 아저씨는 참 친절하셨다. 안녕히 가세요~ 노래하듯 높낮이가 있던 아저씨의 인사는 늘 정겨웠다.겨울이 가고 새 학년으로 올라 가서 정신 없는 봄이 가고 어느덧 날씨에도 열 여섯의 나이에도 절어 버리는 더운 여름이었다. 같은 반 남자애가 선생님께 대들어 버린 사건으로 유난히 교실 공기가 찝찝하고 어수선했던 날. 교실 뒷 문가에 앉아 있던 나는 조용한 자습시간에 금을 긋는 듯한 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두 계절동안 보지 못했던 붕어빵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왜 여기서 나와요..? 순간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우리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놀랍고 생경한 기분이 들어 숨을 컥 먹어버렸다. 노점상에서만 보던 아저씨를 우리 학교에서 마주친 것인데 이상하게 흥분되고 반갑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내가 창가 쪽을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J야!”
순식간에 교실 속 모든 시선이 아저씨가 부른 그 아이에게로 쏠렸다. J는 그날 선생님께 대들어서 사고를 친 아이였다. 갑자기 혼이라도 나간듯 얼굴이 하얘진 그애는 교실 밖으로 황급하게 뛰쳐나갔다. 뒤이어 선생님이 따라 나가시고, 열여섯의 호기심 많고 시끄러운 아이들은 붕어빵 아저씨가 J의 아버지냐는 논란으로 떠들썩해졌다. 세상에. 몇 년을 그 노점상을 오가면서 동창생 아버지라는 사실도 몰랐다니. 동네에 초중고 각 한 개 교 밖에 없는 시골학교에선 친구 집 숟가락 젓가락 갯수 아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한참 뒤, J만 교실로 돌아왔다. 누가 봐도 선생님과 아저씨는 학부모 상담에 들어가서 J만 교돌아 온 상황이었다. 사람이 동료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열여섯의 나이에 있는 아이들은 흥분되는 가십거리를 참지 않았다.
“야! 너희 아버지였어? 왜 말 안했어?!”
너나 할 것 없이 J와 모두의 셀럽인 아저씨의 관계에 대해 확신해서 물어보자 J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일부러 지은 미소였다.
“우리 아빠 아니야. 삼촌이셔.”
그 미소는 단호했다. 뻥 치지 말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모두 자리로 돌아가 자기들끼리 수근댈 수 밖에 없었다. 웅성거리는 교실 속에서 그애는 교실 밖에서 각오했을 의연한 표정과 입꼬리로 침묵의 거절을 표현했다. 나중에 엄마와 노점상에 들렀을 때, 아저씨는 우리 J랑 같은 반 친구니까 더 많이 줘야지~ 라며 그날의 만남을 기억해주셨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J와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다.
“아빠가 붕어빵 장사하는게 창피했나보지.”
씁쓸하게 말하는 엄마.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열여섯의 나는 스물 한 살이 되어 기숙학원에서 삼수 생활을 했다. 달에 200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기숙학원에는 흔한 말로 좀 사는 애들이 많았다. 대기업 관리급 직원, 대학교수, 의사, 건물이 수 채 있는 지방 유지가 대부분 학부모의 직업이었다. 면회가 허용되는 날에 학원으로 들어오는 승용차만 해도 소나타는 길거리 경차로 느껴질 정도로 세단과 외제차가 즐비했다. 양평 출신인 나를 선생님들은 마당에 분수를 가진 대저택에 사는 땅부자 쯤으로 생각했다. 친구들이 부모님께 들은 양평의 높아진 땅값 이야기를 들먹이며 양평 유지가 맞냐고 물아보기도 했다.
“아니, 나 시내에 있는 빌라 살아. 너네가 생각하는 그런 전원주택 단지는 양평 깊은 곳 골짜기에 있단다. 그리고 우리아빠 택배 영업소 운영하셔. 너네 택배 공짜로 보내봤냐. 반송 집 안에서 시켜봤냐. 난 엄마 아빠한테 물건 주기만 하면 돼. 내 물건 급하면 기사 아저씨가 코스 바꿔서 우리집 먼저 오기도 해. 대박이지?”
가깝지만 먼 존재인 택배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애들은 신기해하기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 반응이 좀 웃겨서 휴가 나간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별 반응이 없던 엄마는 한참 뒤 물었다. 다들 집안 빵빵한 사람들인데 택배 한다고 말하는게 창피하진 않았느냐고. 애들이 무시하진 않았느냐고. 내 미간에 주름이 졌다.
“엄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걸로 사람을 무시해? 요즘 애들은 그런 행위가 얼마나 무식하고 못 배워먹은 것인지 다 알아. 진짜 배운데 없이 상스러운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 그런 무시는. 그들만큼 돈을 버는데 뭔 상관이야! 그리고 택배 하는거 진짜 부러울걸? 지들이 그런 반송의 편리를 누려봤겠냐고.”
엄마는 옅게 웃었다. 내 말이 웃기기도 하면서 엄마 본인은 인정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런 엄마 얼굴 위로 J가 비쳤다. 어린 나이에 당혹스런 상황에 떠밀렸던 J와 부족하지 않은 가계형편에도 먹물 냄새 없는 명함에 행여 딸이 창피해하지는 않을까 속상한 엄마의 마음이 겹겹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