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노트] 독일, 슈프레발트 - 달걀 위 무지개

당신의 삶(달걀)을 어떻게 깨뜨리고 나가겠어요?

by Jauney
이번 글은,
깨진 달걀을 우리가 깨고 나간 과거라고 부르며
그 위에 색을 입히는
당신에게 적는 편지입니다.




여행을 취미라고 부르기 시작한 시점부터, 여행지를 고를 때 한 가지 버릇이 생겼습니다.


강렬하나, 알려지지 않은


“소리 없는 아우성”, “작은 거인”과 같이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 버릇은 저를 슈프레발트로 이끌었고, 당신을 만나게 했어요.


독일 베를린의 동물원역


‘도심 속 아마존’으로 불리는 슈프레발트로 가기 위해 베를린 동물원 역에서 기차에 올랐어요.

점차 바뀌어가는 창 밖의 풍경은 셔츠의 가장 윗 단추를 풀어낸 듯한 느낌을 주네요.


하늘을 가리는 빌딩과 바쁜 움직임의 소리에서 도망쳐 나온 지금은, 우리가 항시 바라왔던 그 자유이겠죠?


베를린 도심에서 100km 떨어진 뤼베나우(슈프레발트)
뤼베나우로 데려다준 기차


가깝지 않은 거리를 달려서 뤼베나우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저는 괄호 안으로 보이는 슈프레발트라는 지명을 더 좋아하지만요.


당신께도 서너 번 투정 부렸듯이 이곳은 동양인 여행자가 닿기에는 그리고 담기에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요.


잘 꾸며진 표지판도, 우두커니 선 여행자를 안내해 줄 인포메이션도 없으니 말이에요.


여행을 시작하는 발걸음도 떼기 힘든 것 보니, 제가 여행지를 제대로 고른 것 같아요.


이정표가 되어준 독일인 가족


호기로운 눈을 하고 무거운 발을 가진 제가 조금은 안쓰러웠을까요?

앞서서 뛰어가던, 독일인 가족의 작은 아이가 이 동양인 여행자를 궁금해합니다.


"뤼베나우에는 무슨 일이에요?"

"큰 건물들이 무서워서 도망쳐 나왔어. 강가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

"저희도 배 타러 가는 길이에요, 저를 따라오세요."


저는 이렇게 좋은 이정표를 만나고, 다시 한번 독일의 작은 도시에 한국인의 여행을 묻히게 되었네요.


뤼베나우의 도시풍경
뤼베나우의 도시풍경
뤼베나우의 도시풍경
독특히 채색되어 있는 자기를 전시한 공방


아직 강가에 닿으려면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지만, 저의 짧은 동행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당신의 가게를 보게 됐거든요.


옅고 희미한 채도로 가득한 뤼베나우의 도시에서 당신의 공방은 구름 사이의 노을빛과 같네요.


당신에게 작은 인사를 건네봅니다.

"안녕하세요, 사진을 찍는 여행자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반기는 표정으로 저에게 그랬죠.

"먼 길을 돌아온 얼굴이네요. 잠깐 앉아서 달걀들을 구경하시겠어요?"


슈프레발트의 달걀 공예
초와 구부린 숟가락 그리고 얇은 나무로 채색한 달걀

땀에 절은 여행자를 달걀 앞에 앉혀두고, 당신은 왜 달걀에 채색을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달걀은 우리가 깨고 나간 세계의 잔해입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이 알을 깨고 길을 나서지만,
부서져 떨어진 잔해마저 챙겨갈 정신이 없죠.
.
제가 공을 들여 칠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놓친 그 잔해 그리고 시간입니다.


우리가 여유를 가질 때 즈음엔, 무수히 떨어진 잔해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예쁘게 칠해준 덕분에, 저는 저의 과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공방 구석에 검고 작은 깨진 달걀이 하나 보입니다.


다음에 만나면 다시 꼭 물어볼 생각이에요.

당신의 달걀이 이렇듯 암흑에 묻힌 이유를요.


가방에는 흰 물감을 챙겨가야겠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행노트] 독일, 하이델베르크 - 젊은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