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10화
빈 수레가 요란하다.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
학교에서는 여러 발표 활동을 한다.
손을 들고 자리에 서서 하는 발표, 칠판 앞에 나와서 하는 발표, 모둠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둠 발표 등 수업 내용에 따라 다양한 발표 활동이 이루어진다.
생각보다 발표할 때 떠는 친구가 많다. 앉아서는 떠들고 말을 잘 하지만, 막상 일어서서 조리 있게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아이는 흔치 않다. 앉아서는 다 할 것처럼 굴어도, 시작 전에는 잘할 것처럼 굴어도 결국 무대 앞에 서면 얼음이 된다.
개인 발표는 어찌어찌 피할 수 있다.
손을 들지 않으면 되니까.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되니까.
하지만 모둠 발표는 피할 수가 없다.
모둠원 모두가 해야 하기에 나 혼자만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둠발표는 모둠별로 악기 연주를 한다던지 노래를 부르거나 역할극을 발표할 때 자주 한다. 연습 때는 깔깔거리며 재밌게 한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다.
자신 있게만 해도 반은 성공인데, 흐지부지 어영부영하다가 발표가 끝난다. 연습 시간에 제일 시끄럽게 까불던 친구가 제일 긴장한다.
정말 빈 수레가 요란한 격이다.
멍석 깔아주면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니.
소리 없이 강한 레간자처럼 조용하게 강한 아이를 만났다.
S는 발표를 즐겨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수업 시간 태도가 바르고 집중력이 좋았으나 교사의 발문에 손을 들지는 않았다. 조용히 자기 할 일을 야무지게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인 줄만 알았었는데, 이거 웬걸.
음악시간.
미니 연주회 시간이었다.
리코더나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가지고 와서 모둠별로 합주하는 활동을 했다. 연습 시간을 주면 노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S는 집에서 바이올린까지 가지고 와 모둠 친구들과 열심히 연습했다. 곡을 선정하고 계이름을 써 오는 등 S는 적극적으로 연습을 이끌었다.
연습을 열심히 해도 막상 무대에서 떠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S는 무대체질인지 잘 떨지 않았다.
'오, 강단 있는데!'
S는 연습한 대로 멋지게 발표를 해 냈다. 다른 모둠보다 어려운 곡이었는데 완성도가 높았다. S의 리드 덕분이었을까. 다른 친구들도 평소보다 더 잘하는 모습이었다.
국어시간.
<토끼와 재판>이라는 역할극을 발표할 때였다.
나는 S가 이렇게 실감 나게 연기를 잘할 줄 몰랐다.
S의 별명은 얼음공주이다. 평소 표정 변화가 없는 편이라 붙여진 별명이다. 내가 웃긴 이야기를 하면 웃다가도 나랑 눈이 마주치면 바로 무표정으로 바꾸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역할극을 할 때 목소리까지 변조하며 열심히 하는 게 아닌가.
정말 깜짝 놀랐다.
학기 초에는 보이지 않았던 S의 의외의 매력이 참 좋았다.
겪을수록 내실이 튼튼한 아이라는 게 보였다.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성격.
나서지는 않지만 해야 할 일은 야무지게 해내는 아이.
뭐랄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멋지달까.
멍석 깔아주니 훨훨 난다. 날아.
조용한 수레가 꽉 차 있구나.
수업 시간, 나에게 S는 최민식과 같은 배우였다.
믿고 보는 최민식 배우님처럼 S는 믿고 발표를 시키는 그런 친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