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하게 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게 비교입니다.
사람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듯이 아이들도 각자 발달이 빠른 영역, 느린 영역이 있습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워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첫 아이를 키울 때는 아니었죠.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내 아이에게 대입하는 순간 이성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시기마다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있습니다. 흔히 발달 상황이라고 합니다. 시기마다 이루어져야 하는 발달 상황이 늦어지면 엄마에게 불안이 찾아옵니다.뒤집어야 하는데 뒤집지 않고, 걸을 때가 됐는데 계속 기어 다니기만 하면 언제 하나 신경 쓰이게됩니다.
엄마 생각보다 늦어지면 조바심이 생기고 나도 모르게 아이를 재촉합니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엄마라도 만나면 불안은 걱정이 되고 고민이 되어버리죠. 그러다가 미션을 수행하면 “다행이다.” 하고 마음을 놓게 됩니다. 그 몇 달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겁니다.
유아 시절의 몇 달은 정말 큰 차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돌아보니 그 몇 달은 큰 의미가 없더군요.
“야, 나 11개월에 걸었다.”
“우와. 좋겠다. 나는 17개월에 걸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엄마들도 마찬가지고요.
영유아 시기에는 아이키나 몸무게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평균보다 한참 밑이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성장검사도 많이 합니다. 병원에서는 아이 뼈 나이를 예측하고 아이의 예상 키도 알려줍니다. 예상 키가 작게 나오면 성장에 좋은 비타민을 사 먹입니다. 검사에 나온 것처럼 작게 클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두 아이 모두 발달 시기에 맞거나 조금 빠른 편이었습니다. 엄마가 불안해지지 않게 제 시기에 미션 수행을 해줬습니다. 특히 둘째 아이는 9개월 말쯤 걷기 시작할 정도로 발달이 빠른 편이었습니다. 보통 돌 때쯤 걷기 시작하는 데 둘째는 돌 잔칫날 뛰어다닐 정도로 능숙하게 걷는 아이였죠.
빠른 게 다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대근육 발달이 빠른 아이인지라 클수록 얼마나 빨빨거리고 돌아다녔는지모릅니다. 하도 날쌔서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놓치기 십상이었습니다. 키워보니절닮아 성격도 급했습니다.급한 성격에 걷기도 빨리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둘째 아이가 발달이 느린 영역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언어입니다. 어렸을 때 발음이 좋지 않아 아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죠. 아이는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엄마도 못 알아듣고, 친구들도 못 알아들으니 답답했을 것입니다. 성격도 급한 아이가 말로 소통이 안되니 행동부터 나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3~4살 시기에 어린이집에서 문제를 좀 일으켰습니다.
종알종알 말을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아들 모습에 걱정도 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어 치료라도 받아야 하나 남편과 상의도 했었습니다. 만약 첫 아이였다면 치료 상담을 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이다 보니 좀 더 지켜볼 수 있는 마음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을 누르고 가정에서 언어 인풋이 충분히 이루어지도록 노력했습니다. 책도 읽어주고 아이 말을 끝까지 들어주려고 했습니다. 아이가 말하면 다시 정확한 말로 이야기해 주고 모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다행히 표현언어가 미숙할 뿐 수용언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듣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니 더 지켜봐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7살인 지금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고 무리 없이 소통하고 있습니다. 또렷한 목소리로 유창하게까지는 아니지만 자기 의사 표현을 조리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발표도 곧잘 한다고 합니다.
지금에 와서야 불안에 지지 않고 지켜보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내 선택을 나중에 후회할까봐 말이죠. 너무 늦어져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게 아닌지 가장 걱정되었습니다. 역시 불안은 엄마를 항상 따라다닙니다. 내려놓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계속 붙어있습니다.
유아기를 지나 학령기로 오면 아이 학습에서 불안이 찾아옵니다. 옆 집 아이가 한글을 뗐다는 소리를 들으면 학습지라도 시켜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옆집 아이를 보며 알파벳도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죠. 또래 아이와 자꾸 비교하면서 불안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봅니다.
저는 앞서나가고 싶은 욕심과 뒤쳐질까 봐 걱정되는 불안 때문에 아이들의 학습 시기가 점점 빨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7살에 해도 되는 한글을 3~4살부터 공부합니다. 한글 공부와 함께 영어 공부도 합니다. 뒤처치지 않도록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를 재촉하면서 말이죠.
저는 한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첫째 딸아이 영어 공부를 2학년 말쯤에 시작했습니다. 나만의 교육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너무 높기에 나도 모르게 아이를 재촉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오늘만 해도 딸과 신경전을 했습니다.
딸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집공부로 영어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 다니면서 많은 양을 하고 있는데 20~30분 하는 공부가 힘들다고 대충 하더군요. 양이 많지도 않은데 성의 없이 대충 하는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안 그래도 늦게 시작한 영어공부인데 이렇게 공부하다 뒤쳐질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학원에 다니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뒤처질 수 있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불안에게 진 날이었습니다.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로 자랍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비교하고 불안해합니다. 불안은 우리를 끊임없이 찾아와 새로운 고민들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주변과 비교하면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멀쩡히 잘 크고 있는 아이를 걱정하게 만들것입니다. 불안은 비교지옥과 걱정지옥으로 끌고 가는 저승사자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