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는 솔직하고 화끈한 성격이다. 의사 표현이 확실하고 호불호도 강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대놓고 이야기한다. 가끔 너무 뻔뻔하게 요구해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필요한 것을 사드리면 너무 기뻐하시기에 선물할 맛이 난다.
소파, 세탁기, 에어컨 등 집에 필요한 큰 물건부터 화장품, 마사지샵 정액권 같은 사소한 물건까지 선물로 많이 해드렸다. 달에 10만 원씩 형제예금을 모아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돈을 모아두지 않았다면 엄마가 요구한 많은 것을 사 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선물을 받으시면 리액션이 좋고, 잘 사용하시는 편이라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언젠가 "아휴. 너희가 뭐 해준 게 있다고."라고 말하시기 전까지는.
"엄마, 지금 앉아 있는 소파도 우리가 사준 거거든. 세탁기도 우리가 돈 보탰고, 벽걸이 에어컨도 우리가 사줬고."
"아, 그렇네."
"기억 좀 하라고!!! 받은 거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해 드린 것도 엄~청 많아."
엄마 기억 속에 남편과 내가 사드린 선물 목록이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그리 몽땅 다 잊어버릴 수 있는지. 저 소릴 듣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 보기가 민망해 엄마를 더 구박했다.
기억 좀 하라고. 제발!
잘 사드려도 문제다. 엄마가 필요한 걸 이야기하면 마음이 쓰여 어떻게든 사드리거나 돈이라도 부쳤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로 착각한다.
시어머니의 마음은 알기 어렵다.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속내를 잘 보이지 않으신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본인이 맞춰주시는 편이다. 필요한 게 있으신지 아무리 여쭤봐도 다 괜찮다고만 하신다. 남편과 내가 고민해서 사 온 선물을 받으셔도 별 반응이 없다. 뭘 이런 걸 사 오냐는 식이다.
한 번은 가방을 사드리기 위해 몇 가지 제품을 찍어 사진으로 보내드렸다. 시어머니께서는 고르지 않으셨다. 다 괜찮다고만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서 사 드렸는데, 잘 들고 다니시지 않는다. 나중에서야 성경책을 넣을 수 있게 컸으면 했단다.
'아니, 그럼 말을 하시지...!'
신혼 시절에는 시어머니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해 드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표현을 하지 않으시니 선물 고르는 일이 힘들었고, 고민하다 드리면 나중에 딴 말을 하셨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선물을 드리고 싶은 의욕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냥 남편에게 맡긴다.
"어머님께 여쭤보고 알아서 해드려요."
내가 애쓰지 않고 기대가 없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적절한 요구 표현과 감사 표현은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준다.
친정엄마처럼 과해도, 시어머니처럼 부족해도 별로다.
자꾸 요구하고 선물 받은 것도 잊어버리는 친정엄마가 나은지, 선물을 드려도아무 반응 없고 나중에 딴소리하는시어머니가 나은지... 아직도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