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나갈지 몰라 가족들은 눈치만 봤다. 역마살이라도 낀 것일까?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살만하다 싶으면 집을 나가는 바람에 집안은 언제나 불안감이 가득했다. 내가 공부도 잘하고 착한 딸이 되면 나가지 않을까? 노력을 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불안은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아 떠나지 않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지독히도 외로웠다.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기 위해 일하러 나간 엄마. 하교 후 빈 집에 들어오면 적막감만 흘렀다. 동생과 함께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책을 읽고 숙제를 했다. 우리라도 엄마 속을 썩이면 안 되었다. 우리는 일찍 철이 들었다. 사랑이 고픈 어린아이는 애써 밝은 척 괜찮은척하는 어른 아이로 성장했다.
지독히도 싫었다.
이런 집에 태어난 나 자신이 싫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괜한 자격지심이 들었다. 신규교사 시절, 부모님 성품도 좋고, 직업도 의사라며 소개팅해보라는 교감선생님의 주선도 거절했다. 그런 좋은 집안과 우리 집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지독한 애증이다.
그렇게 나가고 돌아와도 엄마는 받아준다. 이혼하네 마네 하다가도 나갔다 들어온 사람을 간호해 주고 밥을 차려준다. 자식도 다 컸고, 엄마 삶을 살라고 해도 엄마는 되돌이표처럼 그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엄마도 이해되지 않는다.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는 그 사람은 이 생이 만족스러우려나? 우리는 속이 문드러지게 살았는데...
나의 인생 초반은 그 사람 때문에 지독히도 불행했다. 하지만 그 불행을 언제까지 끌어안고 살지는 않을 거다. 나도 나의 가정이 생겼다. 이제는 내가 부모 자리다. 내 아이들에게는 불안감도 외로움도 자신을 싫어하는 감정도 주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