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언제나 조용히 흘러간다. 그 흐름은 물 위로 떨어지는 잔잔한 빗방울 같았다. 아무런 소리도 남기지 않고, 그저 스며들었다. 나는 그 물결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변해갔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처음엔 낯설었다. 그러나 곧 익숙해졌다. 시간은 그렇게 나를 흔들어 놓고, 또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곤 했다.
20대의 나는 직장인이었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50대까지의 삶이 마치 계획된 것처럼 보였다. 안정된 직장을 유지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안정이 더 이상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퇴사 후의 시간은 낯설었다. 이전엔 당연했던 미래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빈자리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길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남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난 순간,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했다.
나는 한때 성취가 삶의 의미라고 믿었다. 목표를 이루고, 남들보다 앞서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30대에 접어들면서 깨달았다. 삶의 진짜 의미는 성취가 아니라 경험 속에 있다는 것을. 남들보다 나은 무언가를 이루는 게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30대의 나는 완벽함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았다. 삶은 결코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실패는 여전히 아팠다. 그러나 실패는 손바닥에 새겨진 흉터 같았다. 아프고 지워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흉터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불완전함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했다. 완벽함은 더 이상 내가 쫓아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40대를 앞두고 있다. 여전히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미지의 영역은 이제 낯설지 않다. 시간이 만들어준 경험은 나를 강하게 했다. 그 강함은 내 삶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시간은 나를 변화시켰다. 20대에는 남들보다 앞서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안에서 발견한 작은 변화가 더 소중해졌다. 어쩌면 시간은 내게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몰랐다. 내 시선과 마음을 흔들고, 더 깊은 삶의 의미를 알려주었으니까.
이제 나는 시간을 쫓지 않는다. 그 흐름을 느끼고, 그 속에서 배운 것들을 천천히 곱씹는다. 시간은 나를 흔들었고, 또 나를 키웠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를 통해 진짜 나를 만났다.
이제는 더 느긋하게, 더 여유롭게.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