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나에게 특별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챙기던 붉은색의 작은 무지 노트는 나의 감정을 담는 공간이었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느낀 순간들, 짧은 시와 단어들,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까지 그 노트는 여행 속의 나를 담아내는 그릇과도 같았다. 매번 새로운 여행지에서 나를 다시 만나고, 그 만남을 노트에 기록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소중한 노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적한 골목길에서 길을 잃은 듯, 감정과 생각이 담긴 기록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노트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종이 몇 장에 불과한 그 노트는 사실 나의 고독과 자유,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나 자신을 담아낸 소중한 기록이었다.
노트를 잃은 순간, 공허함이 밀려왔다. 마치 나의 기억과 생각,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창이 사라진 듯했다. 내가 떠나온 길을 증명하던 유일한 기록물이 사라진 허무함 속에서 한동안 상실감에 잠겼다. 노트와 함께 나의 일부도 사라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상실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노트가 없다고 해서 나의 여행과 감정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내가 진짜 잃어버린 것은 노트가 아니라 그 안에 모든 기억을 의존하던 나 자신이었다. 여행은 기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감정, 나의 일부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노트를 잃고 나서야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과거의 기록에 매달리지 않고,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노트를 통해 나를 정의하려던 습관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상실은 나를 잠시 멈추게 했지만, 그 속에서 더 넓은 시야를 얻었다.
노트를 잃고 난 후,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종이와 펜에 얽매이지 않고, 여행의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기록을 넘어, 더 깊이 있게 여행을 체험하며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노트를 잃은 것은 상실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였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상실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겪는 과정이다. 물건, 관계, 시간, 기회 등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우는가에 있다. 상실은 때때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잃고 나면, 우리는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비로소 더 깊고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상실은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고, 더 나아갈 수 있다.
상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받아들이자. 결국, 상실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신세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