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로 채워진다. 계획하지 않은 우연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 순간은 작아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우연들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닫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작년, 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특별한 기대 없이 평범한 하루였다. 엘리베이터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나는 무심코 올라갈 층을 눌렀다. 그런데 문이 닫히는 순간, 유리에 비친 내 모습 옆으로 낯익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18년 전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네 친구였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친구도 나를 알아보고 놀라 눈이 커졌다. 말없이 마주한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선 친구, 그 모습은 기억 속 그대로였다. 18년이라는 세월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보았다. 더 놀라운 건 그 친구가 얼마 전에 미국에서 막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18년 전,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던 그 친구가 이제 내 앞에 서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대화는 마치 어제 이어지던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날의 반가움을 이어, 우리는 다음날 다시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내가 고민하던 것은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그 만남을 너무 어렵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툭툭 던져봐. 가볍게."
그 말은 의외였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 무엇인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친구는 덧붙였다.
"때론 툭 던지고 나중에 생각해도 돼. 아니면 말고. 그렇게 하다 보면 오히려 일이 더 잘 풀릴 때가 많아."
툭툭 던져보라는 그 말은 내게 새로운 방식이었다. 계획과 고민 속에 갇혀 있던 내게는 가벼운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 조언은 묘하게도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모든 것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 마음속에 쌓여 있던 고민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사람과의 관계도 흐름에 맡기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았다. 친구의 말은 앞으로 내가 마주할 많은 관계에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다. 나는 글을 쓰며 나만의 길을 찾았고, 친구는 미국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 속에서 무엇을 얻고 배웠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삶은 작은 우연 속에서 우리를 흔든다. 그 순간들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가능성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삶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신세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