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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연 Sep 23. 2024

무심코 스친 찰나, 내 생각을 바꾸다

삶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를 멈추게 한다.
계획하지 않은 우연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 순간들은 별것 아닌 듯 스쳐가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것들이 내 생각을 조금씩 바꿔 왔다는 걸 알게 된다.


작년, 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특별한 기대 없이 시작된 평범한 하루였다. 엘리베이터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나는 무심코 올라갈 층을 눌렀다. 그런데 문이 닫히는 순간, 유리에 비친 내 모습 옆으로 낯익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18년 전,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네 친구였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친구도 나를 알아보고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선 친구의 모습은 기억 속 그대로였다. 18년이라는 세월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보았다.


더 놀라운 건 친구가 얼마 전에 미국에서 막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18년 전,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던 친구가 이제 내 앞에 서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대화는 마치 어제 이어지던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날의 반가움을 이어, 우리는 다음날 다시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의 만남은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했다.
한동안 고민하던 관계에 대한 무게감이, 그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조금씩 가벼워진 것이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툭툭 던져봐. 가볍게."


친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은 의외였지만, 그 순간 마음속의 무게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나는 모든 걸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관계는 억지로 매달리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더 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다.
나는 글을 쓰며 나만의 길을 찾았고, 친구는 미국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 속에서 무엇을 얻고 배웠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만남은 가끔 떠오른다.
무심코 스친 찰나가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돌아보면 그 순간들이 나를 조금씩 바꿔 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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