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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연 Sep 22. 2024

잃어버린 노트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늘 특별했다.
그 여행에는 언제나 붉은색의 작은 무지 노트가 함께했다.
나는 그 노트를 늘 가방 속에 넣어 두거나 손에 쥐고 다녔다.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닳아갈수록, 그 노트는 나의 감정을 담아내는 공간이자,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느낀 순간들. 문득 떠오른 생각들. 길 위에서 쓴 짧은 시들까지.
그 노트는 여행 속에서 만난 나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정신없는 시장 한복판에서 그 소중한 노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바쁜 발길 사이로 내 손을 빠져나간 노트는 다시 찾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마치 나 자신을 놓쳐버린 것 같았다. 손에 쥐고 있던 나만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노트는 종이 몇 장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내가 느낀 고독과 자유, 그리고 여행 속에서 마주한 나 자신이 담겨 있었다.
노트를 잃고 나서야 그것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떠나온 길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표였고, 나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노트를 잃은 뒤, 허전함이 밀려왔다.
마치 내가 걸어온 길과 생각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듯했다. 기억의 창이 닫혀버린 기분이었다. 사람들 틈에 서 있었지만, 마음속은 텅 비어 있었다. 노트와 함께 나의 일부도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 허전함은 한동안 나를 붙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빈자리를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노트가 없어진다고 해서 내 기억과 감정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내가 진짜 잃어버린 것은 노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모든 것을 의지하던 나 자신이었다. 기록은 단지 순간을 붙잡는 도구였지만, 내 경험과 감정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노트를 잃고 나서야 더 자유로워졌다.
과거의 기록에 매달리지 않고,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노트에 무엇을 적을지 고민하느라 놓쳐버렸던 풍경과 감정이 떠올랐다.
잃어버림은 나를 잠시 멈추게 했지만, 그 속에서 더 넓은 시야를 얻게 했다.


노트를 잃은 후, 나는 다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했다.
더 이상 종이와 펜에 얽매이지 않고, 여행의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기록을 넘어, 더 깊이 있게 여행을 체험하며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노트를 잃은 것은 허전함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채울 여백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놓친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길을 찾는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비로소 더 깊고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잃어버림은 아팠지만, 그 빈자리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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