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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Jan 12. 2019

65점짜리 영화들

착하지만 조금 모자란,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들



 고백하건대 나는 65점짜리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비급 무비 시리즈들은 대부분 평점이 60-70점 정도다. 평균을 내자면 65점이다. 학창 시절 시험을 봤을 때 65점이 나오면 기분 좋았던 이는 없을 거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좀 다르다. 모두 못 만들었는데 정이 간다. 


 내가 이들을 65점짜리 영화라고 칭했다고 해서 욕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어설픔과 조잡함이 적당히 버무려져야 완벽한 65점짜리 영화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정확한 65점짜리 영화가 100점짜리 영화보다 만들기 힘들 수도 있다. 그 영화 중 하나가 <스윙걸즈>다.  

 

 <스윙걸즈>는 일본의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인데, 그의 영화는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65점짜리다. 그의 특기는 어설픔과 어색함 사이에서 춤을 추다가 어느 순간 엉엉 울거나 찔끔 훌쩍이게 만드는 것이다. <우드 잡> 역시 마찬가지. 


 그중에서 <로봇-G>는 관객들에게 존재론적 고민까지 던져주지만 어쨌든 65점이다.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으니 그에 맞추어 평소보다 약간 더 만듦새가 떨어지게 한 것 같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는 만 점짜리 '65점 영화' 감독이다. 그가 만드는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 통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장되었음에도 현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돈 많이 들인 히어로 무비 속의 늘 더 희한해지기만 하는 악당들에 지친다면 65점짜리 영화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도 있다.


영화 <로봇 G>에 등장하는 오합지졸들(영화 스틸컷)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여러 방면에서 죽어가는 일본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꾸준히 괜찮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에 관해서 알기 위해서는 몇 줄의 설명이면 족하다. 영문판 위키 백과에 그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출처:다음 영화)


"Shinobu Yaguchi is a Japanese film director and screenwriter. He specializes in feel-good "zero to hero" films, where a group of people take up an unlikely activity, face a number of obstacles, but finally succeed." 


 영문판 위키에서는 그를 '제로 투 히어로' 필름을 만드는 감독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그는 영화가 65점짜리인 것만이 아니라 65점짜리(혹은 그 이하)의 오합지졸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만든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오합지졸들이 이루는 성공은 자못 감동적이다. 그가 만든 영화 속 인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을 겪고, 비틀대며 어떻게든 문제를 헤쳐 나가, 종국에는 목표를 이루고야 만다.


 오합지졸들은 모이는 순간부터 성공하기 직전까지 비틀대고 다치고 아파하다가 성공 직전에 비로소 성장의 표식들을 드러낸다. 우리가 <무한도전>에 등장하는 소위 평균 이하의 남자들에게 보낸 뜨거운 응원의 마음이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를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이러한 공식에 딱 맞는 영화 중에 두 가지를 꼽자면 2004년에 개봉한 우에노 주리 주연의 <스윙걸즈>와 2012년에 개봉한 <로봇 G>다. 이 두 작품 사이의 8년 동안 감독은 <해피 플라이트>를 내놓았고 조금 더 나이가 들었다. 그 탓인지 두 영화 사이에는 꽤 큰 변화가 있다.   <로봇 G>에서는 <스윙걸즈>에 있던 것이 없어지기도 했고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우선 없어진 것은 관객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들(너무 많은 장애물과 인물의 이해 안 되는 행동들)이고, 생겨난 것은 생각할 거리이며, 그대로인 것은 오합지졸들의 얼렁뚱땅 성공 스토리라는 점이다. <스윙걸즈>의 인물들은 큰 고민이 없다. 각 개인으로서의 고민보다 중요한 것은 단체가 하는 일이므로 중요하게 그려지지도 않고 사실 스토리 상에서 쓸모도 없다. 그런데 <로봇 G>는 코미디 영화로서는 드물게 한 인간의 내면과 문제를 드러내는 것까지 시도한다. 이 영화는 인간으로서의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기던 노년의 남자가 얼떨결에 로봇인 척을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사실 과거의 산물로 여겨지는 노년의 인물과 미래로 여겨지는 로봇을 섞은 것부터 상당히 흥미가 가는 소재다. 노년의 문제를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감독으로서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볼 수 있다. 



그의 최근작 <서바이벌 패밀리> 대정전 후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로봇 G>는 소재의 보편성 때문인지 그가 가진 노년의 쓸쓸함이 마치 내 이웃의 일처럼 느껴지며 결말에 가서 그가 이루는 성공이 살에 와 닿는다. <스윙걸즈> 전후로 꾸준히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던 야구치 시노부가 2012년을 기점으로 <우드 잡>, <서바이벌 패밀리>를 통해 그리려고 하는 것은 비단 오합지졸들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는 점점 일본 사회와 가정 속의 문제점들을 영화를 통해 녹여 내려 시도한다. 그 변화의 시작이 <로봇 G>이고, 나는 그래서 야구치 시노부 감독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로봇 G>를 봤으면 좋겠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조금 거시적으로 보면 티브이 SP(스페셜 에피소드) <워터보이즈>를 연출하던 감독의, 또 한 편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니 말이다.


 *2019년에 그는 <Dance with me>라는 뮤지컬 코미디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이번에는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다. 그에게 또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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