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유
Welcome to CAMRANH
나트랑 깜란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초록색 인조잔디 조형물 위로 'WELCOME TO CAMRANH'이란 단어가 쓰여 있었다. 새삼 오랜만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 온 기분이 들었다. 물론 국제공항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한국사람만 있는 것 같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시내로 들어가면 베트남다움이 가득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다. 이때 베트남의 삼성이라는 빈(Vin) 그룹의 자동차 계열사인 빈패스트(Vinfast) 차량이 배정됐는데, 'V자'로고를 보니 새삼 베트남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해외여행 기분이 났다.
그렇지만, 이 이상으로 신나게 돌아다닐 일이 없을 거라고는 누가 알았을까?
슬슬 여행의 시발점 베트남 나트랑 시내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본래는 시내로 진입하면서 백사장과 바다, 야자수 그리고 현지 건물 등을 보면 설렐 줄 알았는데, 그냥 그랬다.
그 이유를 한국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① 차창 밖 풍경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베트남스럽지 않은 리조트 외관
② 베트남스럽지 않게 느껴졌던 일반 건물들의 모습
③ 해운대와 별차이를 못 느꼈던 긴 백사장의 나트랑 해변
대략 이 정도가 생각난다. 그냥 이걸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난 이렇게 묻고 싶다.
분명 베트남에 왔는데,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하노이에서 느꼈던 특유의 Vietnam's Vibe는 어디로 실종됐을까? 길가에 가로수도 그렇고, '심시티(Sim City)'란 도시 건설 게임의 동남아 현실판을 경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해외여행을 하면 나의 주특기는 '숨은 현지 맛집' 찾기였다. 예를 들어, 해산물로 유명한 지중해 앞바다를 끼고 있는 프랑스 니스에서는 인생 일식 맛집 'Akoya'를 찾았으며, 싱가포르에서는 송파바쿠테보다 더 맛있는 현지 바쿠테 맛집 찾기에 성공하는 등 맛집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다.
그런데, 베트남 나트랑 자유여행을 준비하면서 당혹스러웠다. 정말 여행 동선에서 잘 짜인 각본처럼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식당이 아니면 들어갈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 현지 식당을 구글맵에서 찾았어도 평점이 낮거나 현지 식당이 아닌 것처럼 꽤 높은 가격에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그 식당들이 맛없었다란 이야기는 아니었다. 분명 한국인들이 찾는 이유는 있었다. 음식 가리는 아내도 베트남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었으니, 맛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뭔가 대체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당으로 한국인들이 몰리는 게 아닐까?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딜 가나 테이블의 80% 이상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만큼 개성 없이 오로지 한국인 맞춤으로 Customizing 된 식당들 천국이었다.
경기도 나트랑시라고?!
아니, 한국 베트남타운 같았어!
그리고 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도 잘 안 가는 롯데마트가 왜 나트랑 여행 필수 코스가 됐을까? 하노이에 동생과 둘이 여행했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곳.
숙소 주변에 마땅한 마트도 없어 빈펄섬에 가기 전 반강제?! 적으로 롯데마트 골드코스트점에 방문하게 됐다. 역시 90% 이상이 한국인들이었다. 이쯤 되면 경기도 나트랑시가 아니라 한국 內 차이나타운이 있는 것처럼 한국 베트남타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롯데마트의 라이벌인 빈그룹에서 운영하는 윈마트(Win Mart)도 여행 마지막 날에 가봤다. 마트가 있는 빈컴플라자가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이 많은 숙소에서 떨어져 있어 한국인 비중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 대신에 한국 관광객이 7이라면 3을 차지했던 러시아/중앙아시아 관광객을 위한 마트 같아 보였다. 즉, 베트남은 없고 '7할이 한국 그리고 3할이 러시아'였던 오로지 Selling을 위한 휴양 도시 나트랑이었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곳이 콩카페와 더불어 유명한 베트남 프랜차이즈 시내 카페 CCCP 커피였다. 이 브랜드는 베트남 밀리터리 콘셉트의 카페라고 생각하면 된다. 콩카페와 함께 이국적인 분위기로 한국인들을 사로잡은 카페였다.
그렇지만, 식사를 마치고 식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어온 CCCP 커피 실내는 최악이었다. 한국 도떼기시장보다 더한 난장판이었기 때문. 매장이 거의 가득 찼는데, 90%가 한국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페에서 유달리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여기서 일단 이국적인 분위기는 Out.
그런데, 아이들이 '악'을 쓰면서 울고 뛰어다니는데,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았던 부모들 덕분에 음료만 마시고 바로 나왔다. 커피를 마시다가 체할뻔한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쯤 되니 현지 직원들에게 내가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베트남의 탈을 쓴 한국 도시라고 생각하면 속이 조금 편했을까?
베트남이 처음이라면, 나트랑보다는 하노이!
나트랑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Hanoi). 나의 첫 번째 베트남 여행지다.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하노이가 나트랑보다 지저분하고 정신없었어도 더 재밌게 놀다 온 곳은 하노이였다고 생각한다.
호안끼엠 호수를 중심으로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현지식을 먹고, 야시장에서는 베트남식 소고기 BBQ를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맛있게 구워 먹었다. 낮과 밤이 다른 두 얼굴의 베트남 Vibe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반면에 나트랑은? 글쎄 잘 모르겠다. 선물마저도 짝퉁과 라탄으로 도배됐던 모습뿐. 스타벅스 시티 텀블러(심지어 나트랑이 없어 호치민으로 구매)가 가장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기념품이었다.
게다가 빈펄섬의 숙박 시설과 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는 빈그룹에서 야심 차게 론칭한 빈펄하버(Vinpearl Harbour). 나트랑의 베니스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싶어서 그랬을까?
빈원더스와 연계되어 하나의 동화 같은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추구했던 것 같지만, 뭔가 어설펐다. 나쁘지는 않았는데, 베트남스러운 것은 거의 찾을 수 없었던 곳. 여기는 베트남의 탈을 쓴 휴양 도시 나트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