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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 미묘한 조지아-러시아의 관계

알쓸신잡, 조지아

by 포그니pogni
이 그림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조지아 / 오른쪽에는 러시아 관련 벽화가 그려져 있다.


조지아(Georgia)
vs 그루지아(Джорджия)


사실 조금 연세가 있는 분들이라면 조지아는 '그루지아'로 더 많이 인식될 것입니다. 그루지아는 소련 시절부터 사용한 조지아의 러시아식 표현인데요. 지금의 튀르키예를 터키로 부르던 것처럼 오랜 시간 그루지아란 나라 이름을 국제적으로 오랜 시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자국의 정체성과 주권을 강조하기 위하여 나라 공식 명칭을 영어식 표현인 조지아(Georgia)로 바꾼 것인데요. 또한,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조지어어와 함께 키릴 문자로 된 러시아어가 아닌 대부분 영어를 병기하여 표지판 등에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죠. 그만큼 러시아의 속국과 같은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다우리, 조지아 & 러시아 우호기념비


러시아 블라디캅카스 ~ 조지아 므츠헤타(트빌리시 근교)까지 이어지는 끝없이 이어진 코카서스 산맥을 관통하는 2차선 도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지아 군사도로(eorgian Military Highway)'입니다.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인데요.


그 도로 가운데 스키장으로 유명한 구다우리(Gudauri)란 지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조지아 - 러시아 우호 기념비(Georgia-Russia Friendship Monument)'가 있죠. 군사도로 건설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우호 기념비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주권과 자주성을 부르짖는 조지아와 러시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기간 약 2주 동안 짧고 강렬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조지아의 영토지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독립하려는 분쟁 지역인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 지역이 있는데요. 러시아의 압승으로 끝나 오히려 이 두 지역이 사실상 독립 상태에 이르게 됐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징집을 피해 온 러시아인들이 많아져 조지아 물가를 많이 올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지아 여행에서 제가 느낀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조지아와 러시아를 잇는 조지아 군사도로


정부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로 향하는 길, 저는 구다우리 지역을 포함한 트루소밸리 프라이빗 투어를 신청해서 다녀왔습니다. 총 6명의 인원 中 러시아인이 4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어와 러시아어에 모두 능통한 조지아인 가이드 코바(Koba)도 있었죠.


저는 러시아 친구들이 없을 때, 슬그머니 가이드에게 조지아와 러시아의 관계를 물어봤습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나쁜 것은 러시아 푸틴 정권이지, 러시아인을 미워하진 않는다."


9박 10일 동안 조지아 여행을 하며 느낀 것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이 국가의 대표 산업 중 하나가 관광업인데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일본 여행을 가는 관광객이 많은 것과 같이 실제로 조지아를 방문하는 관광객 1위 점유율 국가는 러시아입니다.


그래서 조지아 어떤 도시를 가도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러시아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육로로 넘어와 돌아다니는 러시아 번호판을 단 자동차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사람이라고 차별하는 등의 행위도 찾아보기 어려웠죠.


가이드 코바가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습니다. 일제강점기란 역사가 있기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 정부를 싫어하는 것이지 일본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죠.


러시아 제국 귀족의 별장으로 사용됐던 '골든튤립 보르조미 호텔'


어쨌든 아픈 역사지만 조지아가 러시아 제국부터 소비에트 연방 시대까지 러시아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일본식 가옥과 같은 잔재가 남아 있는 것처럼 조지아에도 이런 러시아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아 정부는 주권과 자주성을 확대하기 위해 제2외국어를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바꾸는 것과 같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고, 또 적용됐습니다. 그 결과 요즘 조지아 젊은이들은 러시아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나라 명칭도 바꾸는 등 러시아 속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각종 정책, 활동에도 불구하고 조지아의 경제는 러시아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습니다. 관광업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엄청 저렴한 가격으로 천연가스를 조지아에 공급하는 것과 같이 다양한 루트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벗어나려는 조지아와 속박을 풀지 않으려는 러시아, 앞으로 두 국가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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