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만 1,975일째 #4
D-1,964
오전 7시 40분, 아침 조회 시작
오전 7시 30분부터 10분 동안의 청소가 끝나고 40분 팀 아침 조회가 시작된다. 팀에 배치받고 초반에는 경황이 없어서 아침 조회 시간에 무엇을 하고 지나갔는지 기억이 없다. 그냥 영업팀 대회의실에 10명이 넘는 인원이 팀장을 중심으로 뒷짐 지고 둘러서서 '너는 씨부려라, 나는 귀 닫을게'란 소리 없는 아우성만 왠지 모르게 느껴졌을 뿐. 그러다가 어느 날에 정신을 차려보니,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팀장(이하 홍반장)이 소통을 빙자한 모닝 갈굼을 시전 하는 것이 느껴졌다.
참고로 AB산업 영업팀에 재직했을 때, 팀장이 2명이 있었다. 첫 번째 팀장이 홍반장이고 두 번째가 엄석대다. 홍반장은 내가 입사하고 6개월 만에 아시아에 있는 국가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갔는데, 퇴사할 때 즈음엔 한국으로 쫓겨나듯이 복귀해서 좌천이 됐다. 삼국지로 치면 엄석대는 '여포나 장비'와 같이 무력으로 팀원을 찍어 눌렀고, 홍반장은 원소의 무능한 문신 '봉기 혹은 심배'와 같은 자로 절대 업무적으로도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새치 혀로 팀원들을 조지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집안에서 누나만 셋이 있는 막내라서 어찌나 사람이 소심한지 홍반장에게 찍히는 순간 그날에 찍힌 직원은 컴퓨터 앞에서 일을 못하고 하루 종일 팀장 자리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갈굼을 받아야 하는 신세였다. 그리고 일단 자기보다 일찍 퇴근하면 다음날 결재를 안 해주는 것도 주특기였다. 그런데, 집은 또 왜 그렇게 늦게 가냐???
소통은 양방향이지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군대처럼 팀원들을 모아 놓고 홍반장은 '5분 스피치'를 매일 한 명씩 조회시간에 랜덤으로 찍어서 시키고 있었다. 사실 오늘 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 그렇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기분이 상했는가 그날 갈구고 싶은 직원을 지목해서 5분 스피치를 시킨다. 취지는 이렇다, 아무래도 바쁜 업무 때문에 서로 소통하기 어려우니 조회 시간에 한 명씩 평범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소통을 하자고. 그렇지만, 결과론적으로 돌이켜 보면 모순적인 것이 많았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너무 평범해서는 안 되고, 교훈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교훈'이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다. 팀장의 지목을 받은 모 사원이 지난 주말에 운전면허 실기 연습을 했다는 얘기를 했다. 돌아온 반응은 '근데, 뭐 어쩌라고? 그래서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부터 시작된 모닝 갈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팀장은 아침에 마음에 들지 않은 인간을 찍어서 아침부터 입을 털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좋은 취지로 시작된 5분 스피치 시간은 마녀사냥의 장이 되었다. 엄석대와 홍반장의 아침 조회 마녀사냥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전자는 직설적으로 수많은 팀원들 앞에서 '넌 존x 잘못했어, 어디서 x밥x끼가 니 x대로 그렇게 하는 건데?'라는 식이었고, 후자는 5분 스피치를 통해서 칼날을 돌고 돌아 비수로 꽂혔으니 말이다. 아무튼 회식 메뉴를 정할 때에도 나는 '회'가 당기는데, 너네들은 뭐 먹고 싶니라고 화두를 던지고 '고기'가 먹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아니면 결재하면서 짓밟아 버리니 말이다.
아무튼 5분 스피치, 이것은 정말 스트레스였다. 아침마다 누군가 홍반장의 지목을 당할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인간이 해외 주재원으로 갈 때까지 나는 매일 아침 통근버스에서 혹시나 내가 지목을 당할까 봐 교훈을 주는 5분 스피치를 생각하면서 다녀야 했다. 종국에는 짬밥 순서대로 5분 스피치 순번을 짰다. 홍반장이 지목하기 전에 순번대로 손을 들어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궁여지책이라고 할까? 아침부터 방황하는 그의 화살 시위를 당기지 않게 하기 위한 그런 궁여지책. 엄석대도 나쁜 놈이지만, 내가 이놈이 팀장일 때 신입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소통은 쌍방향이지 일방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