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일 차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시테(Cite) 섬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Time Slot 입장권을 구매한 전지적 장모님 시점 여행지, 오페라 가르니에 입장 시간에 맞추기 위해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그곳은 과거 프랑스 절대왕정의 왕궁이었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정치범을 수감하는 감옥으로 탈바꿈한 콩시에르쥬리(Conciergerie).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앙투아네트가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수감했던 곳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프랑스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주장했다고 널리 알려진 말이 있는데, 실상은 이런 말은 했던 적이 없다고. 혁명의 당위성을 강화하기 위해 혁명대에서 널리 퍼뜨린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다.
절대 왕정 시기 프랑스 왕정의 숙적이었던 오스트리아 태생으로써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렇기 때문에 호사가들의 입에 지금까지 계속 오르내리고 있고, 뮤지컬 작품으로까지 나오기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장모님 역시 마리 앙투아네트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셔서 아주 흥미로운 일정이 됐던 것 같다. 아침부터 오픈런을 해서 줄을 서는 바로 옆 생트샤펠 대성당과 달리 콩시에르주리는 들어가면 바로 입장권(€11.5)을 구매할 수 있었다.
감옥이라서 그런지 입구는 지하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했는데, 화려한 건물이 도처에 있는 파리 시내에 있는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약간 스산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 스산함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감옥이라고 하기에 믿기지 않았던 아치형 기둥이 지하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으며, 진짜 수감자들의 감옥 방이 있는 가는 길목에 있는 기념품 상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나도 장모님도 그리고 아내도 개선문과 에펠탑, 베르사유궁전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프랑스 파리 여행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의 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아두고 감상하고 지나갔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관광지이지만, 파리 일정이 3일 이상 된다면 꼭 들러보길 추천하는 장소!
저 친구는 월급을 날로 먹고 있구먼!
역사적으로 시민이 주도한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 때문인지 프랑스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상당히 강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뉴스에서 종종 보는 바와 같이 강력한 파업 시위로도 유명한 곳이 프랑스이다. 1년 중 바캉스 기간만 1달에 가까우며, 프랑스 대통령도 바캉스 기간 휴식을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길 정도이다.
그러면 노동 시간만큼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기념품 상점이 있던 통로를 지나 정치범들이 실제로 수감생활을 했던 감옥을 보기 위해 지나가는 길목에 있던 현지 안내원은 관광객이 자나 가든지 말든지 하염없이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철저하게 업무를 보고 있던 미술관 관리/감시 직원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어느 나라에나 월급 루팡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관광객들이 계속 지나다니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봤던 아름다운 백색 조명과 고풍스러운 아치 기둥을 봤을 때는 과연 이곳이 과거 궁전의 일부로써 사용됐던 곳이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 감옥이 있던 곳으로 이동하여 좁은 방과 쇠창살을 보니 감옥이 맞는구나란 사실을 체감했다.
궁전으로 사용됐다가 용도가 감옥으로 바뀐 곳이 전 세계에 콩시에르주리 말고 또 어떤 곳이 있을까? 인생무상, 새옹지마 등 한자성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감옥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고,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던 곳.
이제 콩시에르주리의 하이라이트,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전시실로 이동해보려고 한다.
그랬구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떤 마음으로
최후를 기다렸을까?
왕비였다고 해서 감옥 방이 다른 수감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콩시에르주리 한편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속죄의 예배당'이란 공간이 있어 그래도 왕비로서 예우를 어느 정도는 받지 않았을까라고 추정해 본다.
예배당 가운데에는 기도를 하는 장소와 함께 좌우로 그녀의 초상화 그리고 관련된 설명이 적힌 비석이 있었다. 나와 아내는 MBTI가 'T'에 해당해서 그냥 '그렇구나'라고 넘어갔는데, 장모님은 이성보단 감성적인 측면이 더 높으셔서 그런지 '어떤 마음으로 최후를 기다렸을까?'와 같은 말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측은지심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이렇게 궁궐이었던 감옥이란 Spot에서 나는 잘 몰랐던 또 다른 장모님의 모습을 알게 됐다. 생트샤펠과 콩시에르주리 중에서 고민을 했는데, 꽤 만족하시는 모습이라서 또 좋았다. 또한, 영어로 표기된 설명문을 통역해드리며 나 역시도 공부가 됐고 가이드가 적성에 맞지 않나 생각될 정도로 재밌게 전시 공간을 관람했다.
소예배당을 마지막으로 방향 안내 표지판을 따라 나오니 자그마한 '정원'으로 연결됐다. 현대 교도소로 치면 수감자들이 운동할 수 있는 운동장 역할을 했다. 콩시에르주리 감옥 내부에서는 식당 말고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 없었고, 수감자들은 하루에 정해진 한정된 시간에만 햇빛이 허락 됐을 뿐이다.
프랑스 파리 여행을 와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으면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기쁨이 얼마나 큰데, 정해진 시간 내에서 잠시 나와 햇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수감자지만 큰 어려움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런 나의 사색과는 다르게 콩시에르주리 정원은 이곳에서 가장 관광객이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이었다. 감옥뿐만 아니라 정원도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콩시에르주리의 특별한 장소였다.
약 1시간 정도 마치 파리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콩시에르주리 관광을 마치고 나왔다. 다음 행선지는 앤틱을 좋아하시는 전지적 장모님 시점 취향 저격 플레이스 오페라 가르니에이다. 시간이 약간 남아서 걸어서 센강 다리를 건넜는데, 다리에서 보이는 콩시에르주리는 감옥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도록 멋진 건축물 중에 하나였다.
장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아직 프랑스 여행 1일 차밖에 안 됐지만, 한층 가까워진 기분이다. 덕분에 장모님과 둘이 이런 사진도 남겼고 말이다. 다음 여행지에서는 어떤 에피소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