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2일 차, 별서방 나도 프랑스 같이 갈까?
별서방, 파리에 무료 미술관이 있어?
파리 2일 차 오후, 오전 에펠탑 중심 도보 투어가 끝나고나서 아쉽게도 여행 7일 전에 취소된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 투어를 대신해서 백지가 된 일정에 물감을 풀어 색칠할 차례가 다가왔다.
당연히 될 줄 알았던 토요일 오전 투어라서 굉장히 당혹스러웠는데, 프랑스 파리 여행만 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 아쉬웠던 투어 취소 연락이었다. 어쨌든 이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부터는 다시 예쁘게 색칠을 시작해보자!
샤이요궁을 마지막으로 다음 랜드마크 행선지 파리 개선문에 가기 전에 들른 곳이 있다. 거기는 파리시립현대미술관(Musee d'Art Moderne de Paris)이다. 디올(Dior) 박물관을 가려다가 인원이 다 차서 못 가고, 붕 뜨는 일정을 채우기 위해 수소문하다 찾은 곳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오히려 모네의 수련 연작이 있는 오랑주리미술관보다 전체적으로 더 좋았던 고퀄리티 무료 미술관이었다. 장모님도 파리에 무료 미술관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셨는데, 관람 후에 말씀하시길 무료로 파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최고였다고.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시립미술관까지 가는 길에 우연히 열린 파리 재래시장인 이에나 마르쉐(Iena Marche)를 만나 한껏 구경을 하다가 미술관 후문에 도착했다. 아쉽지만, 생화 꽃다발은 반입이 안 되어 안녕을 고하고 미술관 입장을 했다.
One Artist, One Masterpiece
본래 파리시립현대미술관과 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파리 속 일본 현대 미술관인 팔레드도쿄도 일정을 채우기 위한 선택지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구글과 타블로그 리뷰가 지불하는 입장료 대비 만족도가 높지 않아보였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지란 생각으로 들어간 곳이 바로 여기다.
습한 날씨에 천천히 작품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자 들어간 목적도 없지 않아 있었다. 미리 어떤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지 알아보고 오지 않았기에 아무 생각없이 Salle Dufy란 글자를 보고서 계단따라 올라갔다.
계단 맨 위에 발걸음을 딛자마자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그리고 평생 기억에 남을 작품이 하나의 공간에 펼쳐졌다. 역동적인 미디어 아트 작품은 아니었지만, 방의 3면이 한 작가의 작품으로 가득찼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왜 'One Artist, One Masterpiece'란 소제목을 붙여 소개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작품 제목은 'La Fée Electricité'로써 한글로 번역하면 '전기 요정'이라고 번역 결과가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그림체가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 그림으로 유명한 샤갈의 그림인줄 알았다.
당시 작품 이름도 모르고 들어가 미술관 內 영문 설명을 읽고 장모님께 하나씩 해설을 해드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한글 설명이 안 써있기에 작품을 해설하는 내가 장모님에게는 '큐레이터'였던 것이다. 장모님을 위해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술관에 와서 이렇게 머리 싸매면서 영문 해석을 해봤다.
그렇다, 별서방은 이번 프랑스 여행에 있어 가이드였고, 또 큐레이터였던 것이다.
One Artist, One Masterpiece
(두 번째, 앙리 마티스 作)
마치 요정의 방에 들어왔던 것처럼 한참을 Salle Dufy 작품을 앉아서 감상했다. 소재는 전기였지만, 그림체 때문인지 그 순간만큼 마법에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나서 다음 전시를 보기 위에 나왔는데, 가는 길목에 또 엄청난 크기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20세기 피카소와 더불어 최고의 화가라고 칭송받는 헨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니스에 가면 마티스 미술관에 가려고 했는데, 그 마티스의 작품을 파리에서 볼 줄이야!
따지고 보면 지베르니 투어를 가지 못한 일정을 때울겸 경비도 아낄겸 온 곳인데, 그야말로 카지노에서 잭팟이 터진 것처럼 너무 재밌었다. 파리에 와서 첫 미술관이었는데, 이렇게 미술관이 흥미로운 장소였다니! 모로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야수파의 거장 헨리 마티스의 대형 작품을 감상하고, 진짜 파리시립현대미술관 소장 일반 전시 작품을 감상하러 갈 차례이다. 왜 이렇게 기대되는 거지?
나는 큐레이터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시립미술관에는 '프랑스 근현대 유명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앞서 놀라게 했던 마티스부터 피카소, 샤갈 외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의 작품까지 전시 범위가 상당했다.
"별서방, 이게 무슨 작품이야?"
아까 첫 방문했던 곳에서는 한 작가의 한 작품을 영어 해설만 하면 됐었는데, 이곳에서 별서방은 장모님의 일일 큐레이터가 되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또 해설을 읽어보고 번역해서 설명하고를 반복했다.
이는 다음날 갔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도 계속됐는데, 이렇게 해설하고 설명하는 것이 귀찮은 게 아니라 오히려 재밌었다. 나 역시 깊게 해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작품에 대한 통찰을 했고, 숏폼으로 귀결되는 스피디한 사회에서 조금 천천히 사색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
시립미술관의 유료화,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파리에 지어진 건축물은 뭐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다. 파리시립현대미술관도 정문으로 나와 건물 일원을 전반적으로 보면 마치 궁궐처럼 보이는데, 이런 것을 보면 파리 시민들을 충분히 본인들의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만 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멋진 작품을 감상하고서 나오는 길, 어떤 설문조사 하나에 응하게 됐다. 보통 이런 설문조사를 요청하면 그냥 무시하는데, 그 날은 기분이 좋았는지 기꺼이 요청을 받아드렸다. 테블릿 PC로 행해진 조사였는데, 시립미술관의 유료화와 관련된 주제의 설문조사였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작품들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미술관을 오히려 '무료'란 점을 앞세워서 더 홍보해도 모자랄판에 유료화라니...! 괜히 작품 잘 보고 나왔는데, 무슨 사명감 비스무리한 것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유료화에 반대하는 답변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계속해서 여운이 남았던 곳, 시림미술관. 장모님의 큐레이터가 되어 열심히 설명할 수 있었기에 더 즐겁고 추억에 남는 프랑스 파리 여행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