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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Nov 27. 2023

6. 글 쓰기는 어려워도 돈 쓰기는 쉽다.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강의를 꼭 들어야 할까?

- "나 계속 고민하던 그 원피스 포기했어."

- "왜? 더 예쁜 거 사려고?"


남편이 당신 속을 꿰뚫어 보지 않았냐는 눈빛으로 익살맞게 웃는다.


- "아니, 다른 데 그 돈 썼어. 근데 그만투자해서 결과가 남을지 말지 확신은 없어."


남편 표정이 불안해진다. 무슨 일을 저지르는 거냐고 얼른 말해보란다.


- "온라인으로 강의 듣는 일이야. <블로그로 퍼스널브랜딩하기>라는 클래스를 좀 들어볼까 해."


이 남자 안경을 벗고 피곤하다는 듯 얼굴을 문지르며 마른세수를 하더니, 너를 어떻게 말리겠냐는 듯 체념하는 얼굴이 되었다. 달리 말해,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결혼 11년 차 경험으로 알아차렸다. 교사로서 정년을 맞이할 자신감이 없어지는 순간들, 월급날마다 느끼는 현타, 갈수록 무거워질 교육비와 노후에 대한 불안 등 늘 우리의 대화 주제였던 것들이 다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답 없이 끝났던 평소와 다르다.

 그래서 나는 글 쓰는 일로 내 전문성을 키워가고 싶어


그럼 글을 쓰면 되지, 굳이 강의를 듣는 일이 필요하냐고 남편은 물었다.

그러게, 왜 나는 꼭 강의를 수강하고 싶었을까? 아직까지 아른거리는 그 원피스를 포기해 가며.

 

우선, 롤모델이 필요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명제는 진리다. 해 보면 안다, 따라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신규 시절 나의 수업이 그랬다. 교직에 들어선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수업을 잘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산짐승처럼 날뛰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을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수업은 좋아 보이는 선배교사의 것을 '잘 따라 하기'로 했다. 선배교사들도 잘 따라 하라고 수업자료나 아이디어를 흔쾌히 나눔 해주었다. 그래서 수업을 잘했느냐? 당연히 잘 안 됐다. 본래 의도한 것에 7~80프로 만족스러웠지만 혼자 연구해서 실행한 수업보다는 훌륭했다. 열심히 따라 하는 와중에 내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예상치 못한 성과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내가 수강한 오쌤(선생님의 본래 닉네임을 내 편의에 따라 줄였다)은 블로그로 시작해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초등교사다. 육아와 교육에 관해 소신 있는 태도로 경험을 나눈 시간이 자연스럽게 성장으로 연결되었고, 이제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고자 강의를 개설하셨다. 그 일련의 과정이 내가 닮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잘 따라 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혜안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외적 동기가 필요했다.

'혼공'이 힘든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 하는 법. 나란 사람은 야심 차게 시작해서 흐지부지 끝나는 일이 많다. 남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도 힘든데,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은 세상 힘든 일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루틴을 마련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 성장하고자 하는 동기를 꾸준히 환기하고 싶었다.

4주 동안 토요일 저녁마다 줌으로 진행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나의 성장'에 대해 온전히 생각해 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도 좋다. 학교 일에 치이거나, 아이들 챙기기에 바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우선순위가 밀려나는 게 다반사니까 말이다. 또, 함께 수강하는 사람들은 나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사람들, 분명 그들에게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들에게 거울 같은 존재가 된다면, 성장을 향해 가는 시간이 또 의미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원피스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성장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싶었다.

이 나이에 옷 예쁘게 입는 일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면 나는 핸드폰을 열어 쇼핑몰을 투어 하곤 했다. 차라리 옷을 사든가,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없으면서 침만 흘리고 있는 내 모습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다. 사지도 않을 옷을 구경하는 그 아까운 시간에 글을 쓰고 싶다.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아이디어를 붙잡아 잘 벼려낸 다음 쓸모 있는 무엇으로 만들고 싶다.


글을 쓰며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데 드는 비용은 25만 원. 오늘은 글보다 돈을 더 쉽게 썼지만 나중엔 돈보다 글을 더 쉽게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남편에게 약속하며 한마디 더 얹었다.

- 정말로 내가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하게 되면, 나 퇴직하고 강의하러 돌아다닐 때 당신 내 매니저로 채용시켜 줄게. 어때?


미소와 함박웃음의 중간쯤, 남편이 웃었다.

이제 내 꿈은 나만의 것이 아닌 걸로, 그러니 가열하게 실행해 나가는 걸로,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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