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지 마세요.
J 선생님은 처음에 나의 퍼스널 브랜드 코칭 선생님이셨지만, 지금은 큰아들의 글쓰기 수업을 맡아주시는 선생님이다. 감사하게도 인연이 더 깊게 이어져, 이제는 독서 모임을 함께하며 교육에 관한 관심과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제는 선생님과 오랜만에 긴 통화를 나눴다. 이십여 년 동안 초등교사로 재직하셨던 선생님은 의원면직 후에도 집필과 강연을 꾸준히 이어가며, 학교 밖에서 아이들과 만날 방법을 고민하고 계신다. 그 일환으로 운영 중인 초등 고학년 대상 글쓰기 수업에는 나의 열두 살 아이도 1년째 참여하고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할 다음 단계의 커리큘럼을 고심하며, 국어교사인 내 의견을 묻기도 하셨다.
그러다 대화 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교육은 결과가 보여야 해요. 부모님들은 돈을 낸 만큼, 혹은 그 이상의 눈에 보이는 결과를 원하시거든요."
공교육에 있는 나로서는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대목이었기에 다소 충격적이었다. 수업을 설계할 때, 교사는 학습 목표나 성취 기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와 안정감, 소통과 협력의 경험, 특히 토론이나 쓰기와 같은 활동에서 자기 표현이 수용되고 존중 받는 경험, 그로부터 파생되는 자신감, 공동체 감각, 학습 동기와 실력의 향상까지 모두 교육의 일부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에서는 다르다. 성과는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거나, 수치로 환산 가능해야 한다. 실질적인 점수나 등급, 영재원 합격, 경시 대회 수상, 하다못해 자체 제작한 배지나 상장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집 어린이들이 경험한 교육적 경험들도 항상 결과물을 남겼다. 아파트 도서관의 역사 수업, 학교 방과후, 키즈과학카페, 요리나 보드게임, 독서와 관련한 각종 원데이 클래스까지, 집에 갈 때는 항상 손이 무거웠다.
"아이들이 오늘 수업한 결과물이에요, 가정에서 무한 칭찬과 궁디팡팡 해 주세요!"
아이가 수업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렸고, 만들었고, 썼다는 사실이 성실한 참여의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교육의 효과란 당장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또 다른 히틀러, 우월의식에 찌든 엘리트를 만들지 않기 위해 ‘경쟁은 야만이다’라는 구호 아래 68혁명과 교육개혁을 시작했다. 지금의 독일 교육이 세계적인 모범이 된 건, 그 긴 시간을 관통한 사회적 합의와 믿음의 결과다.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견고한 경쟁 중심 사회이고, 부모는 비교 가능한 수치를 통해 안심한다. 아이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경험을 했다는 믿음만으로는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
읽기나 쓰기와 관련한 교육에 대해서라면, 나는 더욱 극단적인 입장이다. 기대하는 교육적 효과나 결과가 '없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일필휘지로 자기 생각을 슥슥 써내려가는 글쓰기 실력이 끝내 생기지 않을 수 있고, 글쓰기 수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못 받을 수도 있다. 읽기에 두려움 없이 양서를 섭렵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책은 멀리하거나 취향에 맞는 만화책에 집중할 수도 있다.
교육의 성과는 수업에 대한 학생의 기대, 참여의 성실성, 학생의 기질이나 특성, 현재 고민의 유무, 무엇보다도 '시간'이라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내가 J선생님께 배운 퍼스널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수강 이후, 수치로 보이는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브런치에 입성했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선생님과 삶과 교육을 함께 고민하며 계속 성장하고 있다. 나의 퍼스널 브랜딩은 아직 그 과정 중에 있고, 나의 의지와 애정 뿐 아니라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므로 당연히 성공과 실패를 지금 판단할 수 없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부모들이 교육활동이나 교사에게 어떤 기대를 품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 구체적 성과만을 기대하는 것이라면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학부모와 학습자는 조급해지고, 교사는 소모되며, 교육의 본질은 흐려진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대책없는 믿음'이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교사라서, 나는 아마 사교육 시장에서는 절대로 수익을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대책없는 이 믿음이야말로 내가 공교육에서 버틸 수 있는 동력이다. 길게 잡아도 일년 뒤면 헤어질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수업과 나의 한마디가 어떤 교육적 효과를 가져올지, 믿음이 없다면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저를 믿지 마시고, 아이를 믿으세요.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믿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