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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말하는 꽃을 키웁니다.

작약, 금계국, 수레국화, 그리고.

by 다정한 시옷

꽃을 예뻐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선물해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으로 더 예뻐 보일 뿐, 막상 내 돈으로 꽃을 살 때는 실용성을 따지는 편이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꽃을 보고, 만지고, 다듬는다.

교정 여기저기에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데다,

꽃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계셔서다.

정기적으로 싱싱한 꽃을 배달받는 선생님도 계신다.


h선생님이 다가와 말하길,

"선생님, 교무실 앞 화단에 작약 핀 거 보셨어요? 너무 예쁘죠?"

'무슨 꽃송이가 저렇게 크고 탐스럽담'했던 꽃이다. 작약, 이름을 알고 나니 볼수록 더 예쁘다. 맘 같아선 두어 송이 꺾고 싶지만 나만 보기 정말 미안할 만큼 예쁘니까 참기로 한다.

꽃이 예쁘기 시작하니, 꽂아만 두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교무실의 화병에도 애정이 갔다.

스승의 날 누군가 받은 꽃이 교무실의 회의용 테이블에 있는데 물을 갈아주지 않은 지 며칠째였다.

꽃을 좀 아는 h선생님과 같이 시든 꽃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무리 간단한 작업이라도 지켜야 할 순서와 방법이 있는 법. 아직 생명이 남은 꽃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려면, 물을 갈고 줄기의 아랫부분을 잘라 상한 물관을 잘라줘야 한다고 했다.

꽃병을 들고 개수대에 갔다. 개수대까지 가는 동안 겨우 붙어있던 꽃잎들이 더는 못 버티겠다는 듯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탁해진 물을 버리고 새 물을 가득 담았다.


"선생님, 물이 너무 많으면 그만큼 줄기가 빨리 썩어요."


상한 줄기를 자르려고 꽃대를 들어보니 신기하게 물에 잠겼던 만큼 색이 거무죽죽하다.

색이 변한 줄기를 가위로 싹둑 잘랐다.

(h선생님이 원예용 가위를 쓰라고 빌려주셨는데, 사무용 가위만 쓰는 나로선 원예 가위를 상비하는 선생님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무줄기는 사선으로, 풀 줄기는 일직선으로 자르면 된다고도 알려주셨다. (무엇이 꽃나무의 꽃이고, 풀꽃의 꽃인지 그것까지 모르는 게 문제)

아주 시든 꽃은 버리고, 라서 키가 깡뚱해진진 꽃들은 적당한 자리를 봐가며 살살 꽂았다.

조금만 더 일찍 손을 대었더라면 싱싱함을 오래 보여주었을 텐데.

남은 꽃줄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

문득, 꽃을 대하듯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 그저 연약하고 가녀린 존재라 살살 다루라는 뜻인 줄만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다. 꽃줄기의 끝을 살짝 잘라내는 건, 겉보기엔 상처를 내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처가 나야 새 물관이 제 역할을 한다. 자르지 않아 상한 물관을 그대로 두면 물이 제대로 오르지 않아 꽃은 금방 시들고 고개를 떨군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렇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안아주고 가득 채워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넘어지고 다치더라도 아이가 제 힘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모는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며 때때로 물을 갈아주고, 줄기를 다듬어 줄 뿐이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꽃은 금계국이다. 노란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줄기에 꽃봉오리가 세 송이인데, 활짝 핀 건 늘 하나뿐이다. 운동장의 금계국을 다 살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세 송이가 동시에 활짝 핀 꽃대는 발견하기 어렵다.

한 줄기에 피어나도, 피어나는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
그 새삼스러운 진실을 떠올리며 우리 집 어린이들을 본다.


‘걷고 말하는 꽃’이 세 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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